불투명하다. 역자의 권유대로 연이어 두 번을 읽었으나, 솔직히 제대로 '보았는지'도 확신할 수가 없다. 감을 잡는다는 것.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감을 잡기가 힘든 소설이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 그래.'
-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다산책방, p.246

인생의 날들이 하루씩 쌓여갈수록 무언가 확실했던 것들은 하나씩 사라져가고, 점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도 어려워져 가는 것만 같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도대체 내가 제대로 이해하면서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건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적지가 않다.

비단 새롭고 낯선 어떤 것 혹은 어떤 이를 대할 때뿐만이 아니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일상적인 일에 있어서도, 또 잘 안다고 생각하는 친구나 가족을 대할 때에도, 종종 어느 순간, '아, 내가 그동안 전혀 감을 잡고 있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나마 이런 순간이나마 찾아온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개는 무심코, 무신경하게, 그냥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 p.165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그런 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월의 찌든 때로 파묻힌 과거의 한 때의 기억을 집요하게 추궁하며, 과연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감을 잡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마치 카메라의 촛점을 잡아나가듯 계속해서 포커스를 맞춰보지만, 흐릿해진 기억의 상은 좀처럼 뚜렷하게 제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손이 떨리는 것처럼 자명하다고 믿었던 인생의 기억이 자꾸만 흐트러진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 p.34

불확실하다. 감을 잡을 수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서글프기만 하다. 오해나 착각은 바로 잡을 수 있지만, 감에 대해서는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다. 더구나 단편적인 사실을 안다고 해서 감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하다'는 어쩌면 나의 묘비명으로도 썩 그럴싸해 보인다.

감을 잡지 못하는 인생, 역사는 그렇게 부주의하게 자신의 시간을 소모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