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감성. 태도로써의 기술. 사람의 생각 혹은 의식에는 저마다의 수많은 개인차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로는 정의하기 어려운 어떠한 한계가 따르는 것 같다. 흔히는 유행, 통념, 상식, 분위기에서부터 구조에 이르기까지, 칸트라면 선험적 지식, 융이라면 집단 무의식이라고 이름 붙였을 이러한 한계들은 시대적·지역적으로 공유되는 감성의 틀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사고는 어떻게 설정되는가, 여러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발터 벤야민은 기술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한다.

예술작품의 대량 복제는 따라서 단지 산업 생산물의 대량생산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태도와 일과의 대량 복제와도 연관된다.
-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관련 노트들', p.213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그는 회화와 사진, 연극과 영화를 각각 대비시키며 이를 만들어내고 감상하는 태도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회화와 연극은 일단 막이 오르면 수정이 거의 불가능할 뿐더러 '지금 여기에서'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제작자나 관객 모두에게 정신집중을 요구하는 일회적인 예술이다. 하지만 사진과 영화는 일시적이다. 편집을 통해 완성되기에 추후에라도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한, 잠재적인 완결로만 나타나게 되고 대량생산을 통해 만들어낸 복제품들에서 어떠한 질적 차이를 발견해낼 수 없기도 하다.

따라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술은 유희적이다. 발터 벤야민은 현대사회에서 고도의 사고실험이나 일회성을 복원하려는 저항 등은 실패의 운명을 맞게 되리라고 전망한다. 예술은 대중의 일상을 향한 진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곧 아우라를 벗어던지곤 집단적 웃음을 통해 정치화의 길로 나아가리라는 것이다.

모든 예술작품, 모든 예술시대에 정치적 경향들이 내재한다는 것은 - 그도 그럴 것이 그것들은 의식의 역사적 형상물들이기 때문에 -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 같은 책, '오스카 슈미츠에 대한 반박', p. 238

영화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처해 있는 증대된 삶의 위험에 상응하는 예술형식이다.
- 같은 책,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p.89(2판)/p.143(3판)

발터 벤야민의 예언은 현재에 있어서는 다소 회의적으로 보인다. 그가 일찍이 우려했듯, 제의적 아우라를 벗어던진 대중예술은 대신 자본의 아우라를 갈아입었고, 일시성의 과잉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결국에는 실패할지 모르지만), 참으로 흥미롭게도 집단적 웃음이 탈일상적 향수(nostalgia)로 나타나는 경우 역시 적지가 않다. 다만 인간의 필요에 응답하는 기술이 삶의 환경을 바꾸고 그에 따라 인간의 촉각도 변화하게 된다는 견해만큼은 현재에도, 아니 앞으로 더욱 유의미해지리라 예상해본다.

파시즘은 대중으로 하여금 결코 그들의 권리를 찾게 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표현하게 함으로써 구원책을 찾고자 한다. 대중은 소유관계의 변화를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파시즘은 소유관계를 그대로 보존한 채 그들에게 표현을 제공하려고 한다. 파시즘이 정치적 삶의 심미화로 치닫게 되는 것은 당연한 역사적 귀결이다. ... 정치적 심미화를 위한 모든 노력은 한 점에서 그 정점을 이루는데,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전쟁, 오로지 전쟁만이 전승된 소유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규모의 대중운동에 하나의 목표를 설정할 수가 있다.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p.92-94(2판)/147-148(3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