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낡은 쇠막대로 구멍가게의 니켈 금고나 터는 소시민 수공업자들인데 대기업인들이 우리를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그 뒤에는 은행들이 버티고 있죠. 주식에 비하면 곁쇠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은행을 설립하는 것에 비하면 은행을 터는 게 무슨 대단한 일입니까? 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에 비하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뭐 대수입니까?
-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은희 옮김,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열린책들, p.131


서서히 물이 끓는다.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개구리는 평화롭게 냄비 속을 헤엄쳐다닌다.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다른 개구리들은 그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 하긴 알았다고 하더라도 어찌할 방법이라도 있었을까. 한 마리 또 한 마리, 그렇게 죽음의 시간은 다가온다.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개구리들이 쏟아져내린다. 돌풍은 언제나 아무런 예고도 하지 않는다.

유치한 비유에 재미가 들린 듯 싶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한 마리 개구리의 죽음조차도 주의깊게 바라볼만한 작가이다. 고독하고도 숭고한 영웅, 매력 넘치는 바람둥이, 순결하고도 가련한 여인, "서푼짜리 오페라"에서는 이런 주인공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현명하면서도 어리석고, 타인의 운명은 알면서도 자신의 운명은 모르는, 서푼짜리 인생들의 서푼짜리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푼짜리 오페라"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마치 일상의 삶을 희극이라고도, 비극이라고도, 혹은 희비극이라고도 규정지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떠한 표정을 지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희극은 너의 이야기이다. 비극은 나의 이야기이다. 희비극은 너와 나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그리 살갑게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때로는 소란스럽고 또 때로는 조용하게 삶의 장소들을 그려나갈 뿐이다. 일상의 풍경화, 그것도 예쁘게 꾸민다거나 색조를 과장하지 않은, "서푼짜리 오페라"는 이런 투박한 풍경화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만약 대장이 병사들에게 항상 너무 과한 요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병사들은 특별한 충성심이 필요하지. 나라가 제대로 되고 왕과 용병대장이 훌륭하다면 필요하지 않은 덕목들이야. 좋은 나라에서는 특별한 덕목이 필요 없으니까. 모두들 평범해도 되고, 머리도 중간 똑똑이만 되면 되고, 가령 겁쟁이라도 상관없지.
- 같은 책, '억척어멈과 자식들: 30년 전쟁의 연대기', p.168

인간의 삶이 서푼짜리라면, 그런 인간이 인간을 담으려하는 예술도 역시 서푼짜리에 불과할 뿐이다. 예술도 결국엔 냄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