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속도감이 압권이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을만한 분량, 아멜리 노통브 특유의 뻔뻔스러우면서도 툭툭 던지는 말투는 오로지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단조로운 구성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황당함 -> 역겨움 -> 섬뜩함 -> 충격'이라는 역자후기를 흉내내어 보자면, 뭐지?(호기심) -> 뭐지?(미심쩍음) -> 뭐지?(멍해짐, 당황스러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다. 아멜리 노통브는 '타자는 지옥이다'라는 단정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는, 거봐! 타자는 지옥이라니까! 라며 점차 확신해가다 갑자기 멈춰서서는, 그런데 말야, 왜 타자는 지옥일까?라고 뜬금없이 묻는다.

"적의 화장법"은 20세기 후반을 장악했던 준엄한 강령(이런 거창한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느껴라, 다른 이들을 보라'는 소위 타자성이라는 것에 대한 격렬한 저항처럼 느껴진다. 아주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반문 하나, 우리에게 그럴만한 여유가 있기는 한가요? 라는 투의 변명을 반박하기란 의외로 쉽지가 않다.

페르소나, 아이덴티티, 에고, 어떤 식으로 부르든, 자아는 공격받고 있다. 이드, 초자아, 본능, 도덕, 타자, 욕망, 동정심, 공감능력 등, 어떤 식으로든 자아를 위해 함께 싸워주는 동맹군 따위는 없다. 살인하거나 자살하거나, 전쟁터에서의 선택이란 둘 중 하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