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의 미디어,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

네러티브 따위는 없다. "홀리 모터스"에서는 오로지 순간만이 존재한다. 한 순간이 사라지면 다음 순간이 온다. 다음 순간이 지나가면 또 다음 순간이 온다.

레오스 카락스는 하루가 끝나고 잠자리에 드는 휴식의 시간마저도 순간으로 만들어놓는다. 분절된 순간에서 네러티브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홀리 모터스"는 미디어로써의 세상을 넘겨다보는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더 이상 실제는 무엇이고 가상은 무엇인지 구분하려는 노력은 무용할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미디어의 무덤 사이를 미친 채 뛰어다니다가도, 리무진에 타는 순간 이미 그 순간은 사라져있다.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칼을 휘두르고 총에 맞다가도, 또 다시 리무진에 타는 순간 다른 순간으로 향해야 한다. 모든 순간은 실제이다. 하지만 리무진이 그 모든 순간들의 네러티브를 지워버린다. "홀리 모터스"에서의 실제는 오로지 화면 속의 순간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을 뿐이다.

마치 레오스 카락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거짓말은 오로지 네러티브 안에서만 의미가 있으니까, 라고. 어쩌다 세계가 순간의 집합이 되어버렸을까. 중간중간 삽입되는 초창기 영화의 장면은 혹여 예고된 미래로써의 현재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