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휴머니즘.

비록 스타일은 극과 극이라고 할만큼 다르지만, 이 영화 역시 "레 미제라블"과 똑같은 실수에 빠진 듯 하다. 인물에 천착하다보니, 보다 많은 말을 해 줄 수 있는 배경이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친다.

덕분에 구동독사회에서 질식되어 가는 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만들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바바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평화로운 전원의 마을에서 자전거로 거리를 오다니는 여의사와,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어떠한 노고도 아끼지 않는 사람들 뿐이다.

게다가 카메라의 시선이 대단히 모호하다. 건조함만이 한결같을 뿐, 마치 그녀가 좋은 사람일까 아닐까, 마치 간을 보는 듯 인물 안으로 확 들어가지도 못하고 아예 냉정하게 확 빠져나오지도 못하는 어정쩡함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혹시나 감독이 주연배우에게 기우는 연정을 억지로 자제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마저 든다.

그리고 엔딩크리딧, 까만 화면에 하얀 글자가 올라가는 엔딩크리딧은 거의 재앙에 가깝다. 엔딩테마의 선곡에 어떠한 사연이 있는 건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영화의 건조함을 갑작스레 깨트리는 최악의 선택, 차라리 음악을 넣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어쩔 수가 없다.

더욱 더 비극적인 건, "바바라"가 "레 미제라블"과 상당히 흡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많은 인력, 보다 많은 기술, 보다 많은 자본으로 무장했던 "레 미제라블"과는 달리, 딱히 어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길만한 요소마저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좀 더 냉정했어야 했다,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부려보아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