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i Molodkin, YES, Crude oil and acrylic, 32 x 68 x 9 cm, 2007
출처 : http://www.artnet.de

안드레이 몰로드킨 Andrei Molodkin

1966년 러시아 출신으로, 현재 모스크바와 파리를 오가며 활동 중이다.


그의 작업은 대단히 직관적이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기호들, 그리고 그 안으로 검은 색의 액체가 펌프질 된다. 엔, 유로, 달러로 예스를 말하고, 민주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혹은 자유의 여신상, 예수의 십자가, 그 밖의 온갖 문명의 상징들 사이로 검은 액체가 흘러다닌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던 것처럼, 검은 액체가 흐르기 전에는 그 모든 기호들은 그저 아무런 의미도 없이 공허하기만 하다.

시쳇말로 쪽쪽 빨린다는 말부터 떠오른다. 검은 액체, 원유는 문명사회의 곳곳을 빠짐없이 흘러다니며 비로소 문명사회를 문명사회답게 만들어놓는다. 정치든, 경제든, 종교든, 어떤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원유는 사회를 살아숨쉬게 하는 혈류가 된다. 일단 송유관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단 한 방울도 새어나갈 수가 없다. 펌프질이 멈추어지지 않은 한 계속해서 정해진 길을 따라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펌프질이 멈추어지는 순간, 바람직한 것, 좋은 것, 혹은 나쁜 것 등으로 이미 자리잡은 기호들 역시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드레이 몰로드킨의 작품은 단순히 문명이라는 또 다른 추상적인 개념에 바쳐지는 것만은 아니다. 문명사회가 인간의 의해 구성된다는 단순한 사실이 그에게는 더욱 중요해보인다.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따 인간을 만들었듯이, 인간 역시 자신의 모습을 본따 문명을 만들어놓았을 뿐이다. 결국 그의 질문은, 인간의 심장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리도 열심히 혈액을 펌프질해대는가로 향하게 된다. 보다 간단히,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송유관에 흐르는, 혹은 송유관 안에 갖힌 검은 액체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무심하게 대답하는 것만 같다. 왜 살긴, 그런 바보같은 질문이 어디있어, 일하기 위해서지라고.

그의 작업 안에서 피와 살을 지닌 인간은 사라져간다. 인간은 문명사회를 위한 혈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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