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다는 것.

"라이프 오브 파이"는 아름답다. 아니, 아름다워야만 했다. 재기발랄한 첫시작, 주를 이루는 험난한 대자연의 바다를 거쳐, 마지막의 결말부에 다다르기까지 이안 감독은 어떠한 잡티조차도 없는 무결점한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 영화는 철저하리만큼 파이의 회상에 의존하고 있다.

파이는 정말 이안 감독다운 주인공이다. 이성애자인 척 하는 동성애자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했던 "결혼피로연"이나 일본인도 중국인도 되지 못하는 남자와, 그런 그를 사랑하는, 애국자도 매국노도 되지 못하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했던 "색, 계"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파이 역시 완전한 서구인도, 완전한 인도인도 되지 못한다. 파이는 힌두어와 영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서구화된 엘리트 부모의 아들이고, 그의 부모는 힌두어로 이루어진 소위 "후진" 고향으로부터 선진화된 세계로 떠나려 한다.

리차드 파커라는 이름의 호랑이, 문명세계와 자연, 자연과 문명세계, "라이프 오브 파이"는 단순히 바다에서 재난을 당한 한 소년의 생존기가 아니다. 바다는 곧 그의 세상이었고, 파이는 세상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에겐 더 이상 부모가 없었고, 부모가 없는 소년에게 남겨진 선택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살아남은 자의 변명. 파이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과거를 회상한다. 그리고 그 과거를 힘겨웠지만 아름다웠노라고 믿으려 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더없이 적절하다. 이 영화는 생존기이다. 어느 정도는 성장영화라고까지도 말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회상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사족.
결말부에서 이야기를 너무 딱 하니 결정지어버리려고 한다는 게 이 영화의 단점.
친절하기는 하지만, 덕분에 상상의 여지라든지, 여운을 줄여버리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