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냉정하다. 물론 영화 자체만으로는 "아무르"는 애틋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미카엘 하네케이다. 상술인지 몰이해인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포스터의 카피문구는 이 작품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몇 가지 질문들.

조르쥬는 아내 안느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가 사랑하는 아내를 사랑하는가. 시종일관 감정의 과잉과 현실적 거리를 오가는 노부부의 딸 에바가 보여주는 부모에 대한 사랑이 과연 진정으로 우러나온 것인가, 아니면 그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가족으로써의 의무인 것인가. 그리고 에바가 그의 연인에게 보여주는 감정 역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첫 장면에서 피아니스트 제자의 성공에 기뻐하는 안느의 애정이 정말로 제자를 향한 애정이었을까.

이어지는 질문, 왜 안느는 더 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는가, 혹시 인간이란 존재 그 자체만으로는 어떠한 사랑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조르쥬는 왜 비둘기를 잡아야 했을까,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사랑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었을 뿐일까. 물이 새는 아파트에 대한 꿈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과연 정말로 안느가 더 이상은 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일까.

너무 냉소적인 것 같지만, 좀 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미카엘 하네케가 그리고 싶었던 것이 사랑의 완성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추상명사에 대한 것이었을까. "아무르"가 '사랑... 그 자체인 영화'라면, 그렇다면 과연 사랑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음악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왜 그토록 고집스러울 정도로 음악을 거부하는가.



덧붙임(추가)

"아무르"라는 제목은 어쩌면, 감독이 이 영화를 죽음에 대한 영화로 보여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 같기도 하다. 만약 그렇다면 '사랑... 그 자체인 영화'는 꽤나 감독의 의도에 충실한 카피라고도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