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들.

무미건조한 제목만큼이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어떠한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다. 일상의 선택들, 매일마다 놓이게 되는 선택의 갈림길들만이 있을 뿐이다. 마치 오늘은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삶의 흔한 고민만큼이나, 각 인물들의 고민, 선택, 그리고 갈등은 일상의 이해범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의 선택이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결정한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최선의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낸 각자의 불행들이다. 두 가족 사이의 갈등, 그리고 가족의 일원으로써,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의 선택들.

그렇지만 정작 이 작품을 인상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치매에 걸려 판단능력을 상실한 노인, 너무 어려서 그저 엄마손을 잡고 따라다닐 뿐인 아이는 두 가족 사이에서 모든 것을 보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물들로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리고 첫 장면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딸이 있다. 이혼하는 부모 중에서 누구와 함께 살고 싶은지 그녀는 재판관 앞에서 대답을 해야만 한다. 그녀는 증거들을 바탕으로 선택을 유예하는 재판관의 역할이 주어져있는 것만 같다. 작품 내에서 재판관은 선택이 곧 직업인 사람이면서도, 단 한 번도 선택을 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어른이라는 점은 꽤나 의미심장해보인다.

하지만 그녀도 결국 선택을 해야만 하고, 판결을 내려야만 한다. 아마 딸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최선의 선택도 그저 또 다른 불행을 낳을 뿐이라는 것을.

각자의 생각, 각자의 선택, 적당한 양심과 적당한 침묵, 자기변호, 합리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는 비극이나 대파국도, 악인이나 선인, 혹은 그저 불쌍한 사람조차도 없다. 그러기에는 이 작품이 너무나도 일상적인 불행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