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중반기에
올바른 길을 벗어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컴컴한 숲 속이었다.
그 가혹하고도 황량한,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도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그 괴로움이란 진정 죽을 것만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만난 행복을 이야기하기 위해
거기서 본 두세 가지 일을 이야기할까 한다.
- 알리기에리 단테 지음, "신곡", '지옥편 제1곡', 허인 옮김, 동서문화사, p. 10, 2007


김기덕의 혼자놀기, 혹은 김기덕 식의 "신곡(La divana commedia)".

그는 세련되지 못하다.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쏟아져나온다. 그의 작품은 끝없이 욕을 하지만, 도대체 누굴 욕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어떤 면에서 그는 철저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도 영화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미워했던 사람들을 은근슬쩍 지옥 속에 밀어넣었던 단테처럼 김기덕 역시 그저 이것은 영화일 뿐이라며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들을 은근슬쩍 화면 안에 밀어넣는다. 그리고 여전히 그는 욕을 하고 있지만, 도대체 누굴 욕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는 정말로 미화나 치장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사람이다. 화면 안에서 한 인간으로써 눈물을 흘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는 바로 다음 장면에서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화면을 바라보며 '지랄하네'라는 냉소를 날린다. 때론 김기덕과 함께 술을 마시는 친구로써의 김기덕이 되어 김기덕을 꾸짖는가하면, 또 김기덕의 그림자로 등장하며 김기덕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놓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일인다역의 혼자놀기를 하며 측은함을 자아내다가, 화면 안에서는 나 역시 배우일 뿐이라면서 순식간에 스스로를 객관화해놓기도 한다. "아리랑"을 보며 사실이 무엇인지, 허구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김기덕의 영화들에서 이 둘은 언제나 섞여있었을지도 모른다.

백일몽 안의 진실, 김기덕에게 영화란 그저 컴컴한 숲 속에서 본 두세 가지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