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의 희극, 시민들의 비극.

"Z"의 세계에선 조심해야만 한다. 권력자들에게 불편한 존재는 언제 길거리에서 얻어맞게 될 지 모른다. 이상한 단체가 곤봉을 휘두르며 사람을 패고 다녀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다. 억울한 마음으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봐도 팔짱만 낀 채 아무런 반응이 없고, 뉴스에서는 피해자가 난동을 피웠다고 오히려 비난하기 일쑤이고, 모처럼 진실에 귀 기울이려는 사람이 나타나도 어디선가 나타난 윗사람은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결론을 내려버린다.

"Z"의 세계에선 금지되는 것도 많다. 자유언론이나 노조, 파업 등은 말할 필요도 없다. 비틀즈의 음악도 들을 수 없을 뿐더러,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물론이고, 사뮤엘 베케트와 해롤드 핀터의 희곡, 심지어는 사르트르의 철학이라든지 소포클레스와 같은 고전마저도 금지목록에 올라가 있다.

"Z"의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반대자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권력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자리보존과 권위만을 챙기는데에 여념이 없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며 아테네의 거리를 채웠던 50만명의 시민들.

"Z"의 세계가 단순한 우화였다면 권력자들을 비웃고 약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Z"의 세계가 실제했었다는 사실은 섬뜩한 감정의 충돌을 낳는다.

그는 살아있다. "Z"의 세계가 보여주는 어리석음도 또한 아직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