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분노일까, 아니면 그저 역사라는 것 자체가 유치한 삶의 이야기들인 것 뿐일까.

장대하면서도 유치하다. 20세기의 전반기를 몸소 체험해내는 것만 같은 5시간 15분이라는 상영시간을 간신히 견뎌내고나면, 마치 그 긴 시간이 마지막 엔딩만을 위한 장광설인 것만 같은, 멍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난사되는 총에 맞아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전쟁은 끝났는데..."라며 쓸쓸히 죽어버리는 사람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이 작품을 어떻게 이어가고자 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의 역사에선 숭고함이란 없다. 그저 다투고 화해하길 반복하는 어린 아이들의 싸움만이 끝까지 이어져간다. 지주와 소작농들간의 싸움,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 그리고, 그리고...

이탈리아의 통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연이은 두 번의 세계대전, 왕정의 폐지, 이런 격변하는 시대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변화무쌍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시선은 정말로 인상적이다. 지주의 아들 알프레도(로버르 드 니로)와 소작농의 아들 올모(로버트 드 니로)로 대비되는 삶의 모습들.

그는 어느 순간엔 한없이 온정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엔 다큐멘터리처럼 객관적으로 멀찍이서 그들을 관찰하려 한다. 그리고 또 다음 순간엔 아주 가깝게 다가가서 카메라와 그들 사이의 거리를 없애버린다. 그런가하면 또 순식간에 돌변해서 어느샌가 그들의 삶을 비웃고 있다.

마치 전혀 다른 여러 명의 감독이 연출하고 있는 것만 같은 이 기나긴 필름이 마무리지어질 때쯤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1900"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고자 했던 어린아이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격변하는 시대에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자신이 아는 것 외에는 의지할 게 없었던 당황한 아이들, 그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단순히 그런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일 뿐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