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미래를 가림으로써 인간을 축복하고, 과거를 볼 수 없게 함으로써 저주한다. - 헤르만 브로흐, 김경연 옮김, "몽유병자들", 열린책들, p. 136


현학적이면서도 순진한, 그리고 또 잔인한.

헤르만 브로흐는 마치 키에슬롭스키의 <삼색 시리즈(1993-1994)>처럼, "몽유병자"들을 형이상학적인 <글루미 선데이(1999)>로 이끌어간다.

장장 7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세 편의 이야기. 그는 절대정신의 헤겔을 비웃기라도 하듯, 낭만주의와 무정부주의의 합으로써 즉물주의를 도출해낸다.

어지간한 일에는 "어떻게 그럴수가"라는 말을 하지 않는 네거티브한 성격에도 불구, 소설 전반의 느린 호흡을 배신하듯 던져지는 결말엔 뭔가 아무 생각없이 즐거울 수 있는 걸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나 세 번째 이야기 '1918 후게나우 혹은 즉물주의'는 페이지를 넘기는 고통에 있어서나, 시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에 있어서나, 앞선 이야기들은 단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의 높은 실험성과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과연 헤르만 브로흐의 이 소설을 정말로 소설로 분류해야 할지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좋다 나쁘다를 떠나 마치 갈증을 채우듯 수시로 찾아야만 하는 그런 종류의 책으로 분류하고 싶다.

시간은 나를 배신한다. 모든 것이 다 부질없이 생각되고, 도대체 왜 살아있는건지 생명에 대한 의문이 들고, 그저 그런 항상성만이 나를 붙잡고 있다고 느껴질 때, 그런 때라면 더욱 여운을 남길만 하다.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이 연말을 "몽유병자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건 정말이지 행운이었고, 그의 반도(叛徒)와 범죄자에 대한 시각(p.481-483)은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