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교과서와 같은 느낌을 주는 책, 아니 그보다는 도덕교과서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벤담과 롤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오가며 정치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정의의 3가지 모습을 바탕으로, 딱딱하거나 지루한 원론적인 이론보다는 현재의 이슈들과 실례들을 적극 활용, 누구나 한 번쯤은 보고 생각해봤을만한 삶의 지점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현대사회에서 가치의 문제는 개인들의 판단에 맡겨진다. 그래서 저자도 쉽사리 어떤 것이 옳다고 단정짓지는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무언가 사회적으로 더 좋은 가치, 보다 우선시해야 할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는 여운을 남긴다.

책의 첫머리에서 마이클 센델이 셰익스피어와 <심슨가족>을 예로 들었듯이, 개인적으로 예술에 있어서 어떤 것이 더 좋은 예술인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현대미학도 역시나 이 부분을 개인들의 판단에 맡겨두는 편이고, 또한 이것이 옳다고도 생각하지만, 이 논리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자본의 감흥에 함몰되는 광경을 목격할 때마다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센델은 현대 자유주의를 반론하기 위해 "인간은 서사적인 존재"라는 명제를 빌려온다. 당연한 이야기같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과거가 있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관계지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현대 자유주의 철학은 마치 인간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양 별개로 취급하려 든다. 롤스의 원초적 입장처럼 극단적으로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면서까지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예술가의 인생과 작품은 별개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작품의 의미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철학자의 경우엔 심지어 자신의 말과 행동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자신의 사상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자유는 모든 것을 분리하려고만 해왔는지도 모른다. 행동과 책임의 분리, 과거와 현재의 분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리. 그래서 다양성에선 자기회의감이 묻어나오고, 더 이상 타자를 마주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흩어진 가치들을 다시 불러모으기 위한 진지한 시도이다. 이는 곧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과연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