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편지를 날린다. 각종 치부와 모함으로 얼룩진 협박편지. 작은 마을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세련된 의사 제르망(피에르 프레즈나이)에 대한 비난을 쏟아놓던 편지는, 점차 평화롭던 마을사람들의 부도덕한 비밀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편지가 나돌 때마다 마을은 서로에 대한 의심에 빠져들고, 편지를 받은 한 입원환자의 자살은 사람들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공포로 몰아세운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고발, 시대에 대한 우화. 1917년 튈(Tulle)에서 발생한 실제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까마귀>는 작은 마을을 통해 나치스의 점령 하에 있던 1943년의 프랑스를 은유한다. 평온한 외관과는 달리 아이부터 어른까지 곳곳으로 스며든 부정과 부패, 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군중에 이끌려다니는 지도층, 지식인과 대중 사이의 멀어지는 간극, 권위의식과 편견을 조장하는 분위기 등,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마자 힘없이 무너진 프랑스에 대한 충격은 <까마귀>의 비밀로써 드러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