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의 한 수도원에 눈발이 날린다. 알프스의 하얀 빛으로 둘러쌓인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은 어떠한 미사여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시간은 자연의 음성 아래 정지된다. 침묵의 시간, 찰나와 같은 영원, 영원과도 같은 찰나. 서둘러야 할 이유나 높은 고성을 내어야 할 이유, 자극적인 감각을 찾아야 할 이유는 없다. 차분하고 한결같은 일상은 행복으로 충만하다.

2시간 40분이라는 긴 런닝타임이 너무나도 짧아 아쉽다. 화려한 시각효과는 커녕 이렇다할 나레이션조차도 없지만, <위대한 침묵>에 기록된 고요의 풍경에선 단 한순간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침묵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한 필립 그로닝(Philip Groning) 감독의 의지, 그리고 그의 의지를 받아들이기 위한 수도원의 16년여에 걸친 숙고의 시간은 상영시간 내내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영화의 엔딩크리딧이 오르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로 나서면, 영화의 포스터에 쓰여있던 카피문구가 온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언어가 사라진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보기 시작한다'

미디어가 곧 일상이 된 현재에서, 언어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과장되어있다보니, 어떠한 것에서도 진실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하얀 수도복을 입고 절제하는 수도승들의 미소가 머릿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랜 침묵의 끝에서 자신의 삶을 오직 행복이라는 말하는 노수도승의 짧은 이야기가 큰 여운을 남긴다. <위대한 침묵>은 관객을 산책으로 이끄는 작품이다. 홀로 걷는 산책에선 어떠한 질문이나 대답도 필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