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필름만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작. 한창 이름이 높은 배우들과 스탭진이 총출동하였으며, 여기에 헐리우드의 거대자본까지 더해지며 기대를 모았으나 끝끝내 완성될 수 없었던 앙리-조르주 클루조(Henri-George Clouzot)의 1964년작 <지옥(L'enfer)>. 창고 속에서 고이 잠자고 있던 필름 속엔 조금의 오차도 용서하지 않는 정밀한 장면구성, 거의 배우들을 쥐어짜냈다고 말해도 좋을만큼 진행된 열 차례에 가까운 리허설과 재촬영, 감독의 불면증 덕분에 잠깐의 수면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던 스탭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화 안에서 예술을 구현하려던 앙리-조르주 클루조. 키네틱 아트(kinetic art)와 옵 아트(Optical Art)로 가득한 영상, 컬트무비를 연상시키듯 몽환적인 음향효과와 빛의 사용, 자신의 모든 것을 극한까지 밀어부치던 그의 열정은 건강악화와 동시에 끝을 맺는다. 감독의 요구에 지쳐갈수록 더욱 더 매력을 발산하는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의 악몽을 바라보며, 만약 이 영화가 완성이 되었더라면 어떤 모습이었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그의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제작된 끌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의 <랑페르(L'enfer, 1994)>와 이 다큐멘터리 덕에 막연한 상상의 여지라도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