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상(ideal)은 아름답지만, 현실이 된 이상은 생각처럼 아름답지 못하다. 20세기의 시작, 영웅주의와 엘리트주의에 한껏 젖어있던 사람들은 마치 세상에 이상향이 찾아올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프랑스 혁명의 변질과 복고에 대한 기억을 애써 부정하며, 그들은 러시아 혁명과 그에 뒤이을 공산주의 혁명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마치 데자뷰를 보듯 1940년 트로츠키의 죽음은 1793년 프랑스 혁명기의 지롱드파의 몰락과 그에 뒤이은 마라의 죽음을 고스란히 재현하며, 세계대전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을 아름답게 찬미하던 이상주의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먹구름을 드리웠다. 독재화되어가던 공산주의는 혼란한 역사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치의 이미지에서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고, 모든 이상은 백일몽처럼 사라져갔다. 한 때는 엘리트적 이상주의자이자 열정적인 행동가이기도 했던 조지 오웰은 인간성을 믿었던 모든 사람들의 실패를 온몸으로 지켜보았다.

"혁명을 보장하기 위해서 독재를 행사하는 게 아니라 독재를 하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는 걸세." (조지 오웰, "1984", '제3부', 정희성 옮김, p. 368)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적 픽션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Animal Farm, 1945)"에서 혁명의 실패를 다소 악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통렬한 어조로 비판하는 데에 이어, 자신의 마지막 작품 "1984(Nineteen Eighty-Four, 1949)"에서 발달된 기술 아래 모든 사람이 통제되는 경직된 미래사회를 그려내며 인간성에 대한 마지막 믿음까지 철저하게 허물어뜨려간다.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의 3개의 국가만이 남아 끝없는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1984년의 미래세계.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빅 브라더(Big Brother)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오세아니아의 런던에서 살아가고 있는 말단의 공무원이다. 기록국(Recdep; Records Department)에서 현재에 맞게 역사를 날조하는 일을 하던 그는, 한편으로는 진실이 사라져가는 현재에 저항해야만 한다는 절박한 신념을 가지게 된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자유이다. 만약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도 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같은 책, '제1부', p. 114)

윈스턴은 소문으로만 무성한 반란조직 '형제단'에 합류하고 싶어하지만, 텔레스크린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상황에서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일기장에 자신만의 진실들을 적어가는 것 뿐이다. 그는 표정을 숨기고 텔레스크린이 없는 곳에서 어쩌다 한 번씩 행하는 조그만 일탈행위에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중세의 카톨릭교회마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관대한 편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과거의 어떤 정권이든 시민들을 끊임없이 감시할 힘이 없었다는 데 있다. … 특히 텔레비전의 발명으로 동일한 기계가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같은 책, '제2부', p. 287)

조지 오웰은 윈스턴이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지배계층인 당원(Party)과 피지배계층인 노동자(Proles)의 사회를 세세하게 묘사해낸다.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면서도 끊임없이 내부로부터 감시를 받아야만 하는 당원들과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인간으로써의 대접은 받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의 삶에 만족하는 노동자들. 당원으로써 당에 불만을 지닌 윈스턴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걸어보지만, 마치 트로츠키가 그랬던 것처럼 무지와 무관심이라는 일상의 관성을 어찌할 수는 없다.

어떤 면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도 납득하지 못할 뿐더러 현재 일어나고 있는 공적인 사건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가장 악랄한 현실 파괴도 서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책, '제2부', p. 221-222)

한편으로 지배계층은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사고 자체를 지배하려한다. 과거의 기록은 현재의 상황에 맞게 지속적으로 수정되고, 언어는 '어떤 것'을 말하느냐 뿐만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까지 통제 하에 놓여진다. 부록으로 기재된 '신어(Newspeak)의 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언어는 더 이상 "사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줄이기' 위해서(같은 책, '신어의 원리', p. 420)" 사용된다. 재미있는 건 '신어의 원리'에 따르면 "1984"야 말로 소멸되어야만 하는 대표적인 문학작품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정통주의는 생각하지 않는 것,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걸 뜻하네. 요컨데 정통주의란 무의식 그 자체일세." (같은 책, '제1부', p. 77)

삶과 정치, 그리고 진실들. 분명 조지 오웰이 상상했던 1984년과 같은 끔찍한 시기는 다행히도 도래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이 곧 정치이건만, 그런 삶이 정치에게 참으로도 무관심하다는 조지 오웰의 기본적인 생각만큼은 여전히 유효해보인다. 학교와 직장, 그리고 집에서 설득과 부탁, 명령들을 하며 자신만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빅 브라더들은 언제 어디서나 있다. 사회가 있는 한, 정치가 없는 삶이란 상상할 수가 없지만 일상은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평온하게 흘러만간다.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조지 오웰, "동물농장", '나는 왜 쓰는가', 도정일 옮김, 민음사, p.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