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 도시의 구조(The structure of a city), Acrylic on canvas, 162*130cm, 2008
출처 : http://www.eunseon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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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서울 태생의 화가.

도시의 먹이사슬.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생명은 모름지기 먹어야 살 수 있다. 또한 두말할 나위가 없이, 먹히는 존재가 없다면 먹는 존재 역시 있을 수 없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식탁의 예의범절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무엇인가를 먹는 순간에, 먹히는 존재를 떠오르지 않게 할 것. 어떤 의미로 도살장은 감옥보다도 더욱 더 낯선 공간이며, 누구도 식탁에서 생전의 닭이나 소의 모습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박은선 작가는 지극히 불편한 문명의 금기, 먹히는 존재들을 도시 안으로 불러들여 현재의 한국사회를 은유한다.

<우리는 모두 어린 것을 좋아해(Everyone loves young girls, 2007)>의 화면 밖의 어떤 이는 불안한 눈빛으로 침대 위에 앉아있는 한 어린 소녀를 바라보고 있고, 소녀만큼이나 순진무구한 빨간 눈빛을 한 토끼는 마치 그 어떤 이를 두려워하듯 <제 간을 받아주세요(Please, take my liver, 2006)>라며 제 눈빛보다 더 붉은 간을 받아줄 이를 찾기 위해 <위문전시(A comfort exhibition, 2007)>를 떠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처럼 적극적으로 희생당할 것을 당연시하는 희생자들을 바라보는 것조차도 그리 편치만은 않다. 그래서 <도시의 구조(The Structure of a city)>에서 곰과 사슴은 우리 안에 갖혀 와인잔에 수혈을 강요받고, 유원지에서 일하는 고양이들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회전목마를 돌려야만 한다.

미디어를 활용한 정교해진 폭력, 스스로를 드러낼 기회마저 잃은 비애어린 희생자들. 박은선 작가의 작업은 첫눈에 반할만한 해학으로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농담과 무관심으로 일관되는 도시의 그늘에 대한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