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Death and the Maiden)>의 저자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이 이야기하는 칠레 현대사. 아마 국내의 관객들은 이 작품을 바라보며 놀랄만큼 친숙함이 느껴지는 칠레의 모습에 놀랄지도 모른다. 간신히 세운 아옌데의 민주정을 무너뜨린 군부의 피노체트, 그리고 1988년 마침내 이루어낸 피노체트의 퇴진. 한국 또한 4.19로 이룬 민주정이 허무하게 군부의 폭력 앞에 무너졌고, 1987년 6.29선언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만 했던가.

아옌데 앞에서 '국민이 지켜준다'를 외쳤고, 마침내 1988년 국민투표에 의해 피노체트가 물러나자 온통 축제를 벌리며 환호성을 지르던 시민들. 홀로 살아남아 후세에 이야기를 전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도르프만은 원수처럼 증오하던 피노체트의 죽음 앞에서 한껏 기뻐하지도 못한 채 회한에 둘러쌓인다. 1973년 9월 11일 아옌데가 무너지던 칠레,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무역센터가 무너지던 미국을 동시에 겪은 그는, 아끼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아픔은 어디에서나 다르지 않다고 읊조린다. 칠레의 전반적인 정치사를 차근차근 되집으며 라틴아메리카가 바라보는 미국의 독선을 날카롭게 설파하는 도르프만의 오랜 망명이 이제는 온전히 끝나기를 바라게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