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정말 간단하게 이 영화에 대한 소감을 쓴 적이 있었다. '이 시인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상당히 괴로울 수도...'라고 썼던 문장을 심하게 와닿아하셨던 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브래드 피트가 나온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The Assassination Of Jesse James By The Coward Robert Ford, 2006)>이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 2002)>처럼 <실비아(Sylvia, 2003)> 또한 선결지식이 없으면 지루함에 몸을 베베꼬게 될 수 있는 영화 중의 하나이다.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모더니즘의 마지막 한 귀퉁이와 모더니즘에 반대하는 새로운 물결 사이에서 등장한 여류작가이다. 고백시(Confessional Poetry)의 대표주자 로버트 로웰(Robert Lowell)에게 영향을 받은 그녀의 시작(詩作)은 자기기술(Autobiography)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아버지를 나치에 비유한다던가, 대학살(the Holocaust)에 대한 은유 등이 거침없이 등장하는 그녀의 시에서는 삭막한 언어가 주는 강렬한 인상과 그 안에 숨겨진 어린 아이와도 같은 섬세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또한 결코 순조로웠다고는 말할 수 없을 테드 휴즈(Ted Hughes)와 결혼생활로도 유명하여, 영화 <실비아>에서도 인연인지 악연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이들의 만남을 침착한 어조로 따라간다. 영미권에서는 미국 고백시의 실비아 플라스, 영국의 자연시인 테드 휴즈가 거의 고전과도 같이 자리잡았지만, 국내에서는 두 작가 모두 아직 낯선 이들인지라 개봉 당시 별다른 반향없이 상당히 조용하게 묻혀버렸다. 테드 휴즈의 동화원작을 바탕으로 한 브래드 버드(Brad Bird)의 1999년작 <아이언 자이언트(The Iron Giant)>정도가 그나마 알려진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들의 사랑은 1956년의 케임브릿지(Cambridge)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미 꽤나 주목받는 문인이었던 20대 초반의 실비아 플라스와 2살 연상의 테드 휴즈는 한 파티장에서 만나 서로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품게 된다. 마치 운명처럼 바로 그해 6월, 둘은 결혼식을 올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행복한 순간을 보낸다. 마침 아이가 생긴 이들 부부는 영국 런던으로 돌아와 각자의 작품세계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생활은 그들을 서서히 멀어지게 만들었다. 마치 고백시와 자연시가 가지는 감성의 차이를 보는 것만 같다. 실비아 플라스가 지니는 내면에 대한 집요함은 점점 관계에서의 집요함이 되어가고, 테드 휴즈의 원초적이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갈구는 관계에서의 자유로 나타난다. 불안불안하게 이어져가던 이들의 결혼은 테드 휴즈의 외도로 인해 1962년 파혼으로 결말나고, 이듬해 2월 그녀는 가스를 틀어놓은 오븐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시와는 달리 실비아 플라스의 삶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리는 편이다. 요절한 천재여류시인으로 극찬하는 이도 있고, 미쳐 날뛰다가 자살한 여자로 폄하하는 이도 있다. 그녀를 견디다못해 외도를 하며 파혼까지 만들어낸 테드 휴즈 또한 그녀의 유작들을 편집하며 대중의 원색적인 비난을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다. 자신의 무덤 앞에서 씁쓸하게 지난날을 추억하며 쓴 "Daffodils"가 또한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으니 세상일이란 게 참 묘한 듯 싶다. 공교롭게도 앞서 말한 <아이언 자이언트>의 원작 <The Iron Man> 또한,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실비아>는 둘의 만남부터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까지,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커플의 위태로운 사랑을 드라마로 그려낸다. 감독 크리스틴 제프스(Christine Jeffs)는 그녀의 우울과 시대의 암울한 분위기를 지루할 정도로 적절하게 그려내었지만, 실비아 플라스에 대한 문학적인 조망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선결지식이 없다면 미쳐가는 한 여자와 이를 지긋지긋해 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상투적인 지루함만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도와 집중력, 캐스팅과 스타일 등에서의 괜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권하기에는 어려운 작품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