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네이트계정이 해킹되어 느닷없이 지인들에게 왠 돈이 필요하냐고 묻는 전화에 시달렸더랜다. 덕분에 요즘은 하루하루 쓰지 않는 사이트들을 생각해내며 해지하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카페를 대대적으로 정리하다가, 우연히 다음의 연재만화배너 <그래피티>가 눈에 띄였다.


출처 : 위키피디아

고전 편향적인 취향이라지만, 하위문화에 대한 관심은 늘 가지고 있어왔다. 하긴 고작 하위문화계의 고전 딕 헵디지(Dick Hebdige)의 "하위문화 : 스타일의 의미(Subculture : the meaning of style)"를 읽었을 뿐, 어쩌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만 보는 편이니 딱히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엔 어색하기도 하다. 여전히 고전들 속에 파뭍혀 허우적대다가 발견한 <그래피티>는 상당히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미술고등학교에 다니는 '도경'은 성적도 별로 안 좋고 딱히 미래에 대한 꿈도 없는 학생이다. 집으로 가던 중 도경은 경찰에게서 도망치는 낙서쟁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남겨놓은 미완성의 작업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다. 그들 중 한 명이 떨어트린 락카통 하나로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 도경은 다음날 다시 찾아간 장소에서 자신의 락카통을 되찾으러 온 낙서쟁이 '유령'을 만난다. 얼떨결에 그의 집에까지 따라가게 된 도경은 벽과 락카로 만들어가는 예술 '그래피티(Graffiti)'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최종훈 작가의 2004년작 <그래피티>는 깔끔한 그림체만큼이나 산뜻한 이야기로 '그래피티'의 세계를 소개한다. 최종훈 작가는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보다는 그래피티 아트라는 소재에 더욱 집중함으로써 몰입감을 높여준다. 주인공 '도경'이 관찰자적인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작가 자신이 그래피티 아티스트들과 함께 겪은 일화들을 '도경'이라는 인물로 투영한 게 아닐까싶다.

미디어비평가들이 우려하듯 국내의 하위문화는 다소 왜곡되어 보여질 때가 많았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 2001>에서처럼 음침한 깍두기 문화가 하위문화의 전부처럼 여겨졌고, 그 이후에서는 다소 긍정적인 측면도 부각되기도 했었지만 대개 젊음의 열정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래피티>는 하위문화에 대한 즐거운 관찰을 보여주는 호기심 넘치는 작품으로, 오늘날의 민중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그래피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도시의 아웃사이더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의 탈출구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