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은 기념비적인 해였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Les Innocents, 2003)>이나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식스티 나인(69)>을 포함해, 로버트 저메키스의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와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의 저작 곳곳에서까지, 당시의 흔적을 그리워하는 작품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에서 저자 이영재는 '꽃을 든 사회혁명'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거대한 문화적 흐름이 세계를 뒤덮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좋기만은 할 수 없는 법이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Last Exit To Brooklyn, 1989)>와 <니벨룽겐의 반지(Die Nibelungen, 2004)> 등으로 알려진 울리 에델(Uli Edel) 감독은 <바더 마인호프(Der Baader-Meinhof Komplex, 2008)>에서 68혁명이 낳은 음지를 찾아간다. 그들만의 전쟁. <바더 마인호프>는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독일 적군파 RAF(Red Army Faction)에 대한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아일랜드의 IRA가 독립을 위해 싸웠다면, 바더 마인호프 그룹은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을 꿈꾼 이들이다.

이란의 국왕 내외가 방문한 1967년의 서독. 이란의 정치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국왕방문 반대집회를 열게 되고, 이 집회에서 왠지 낯설지만은 않은 경찰의 과격한 진압으로 인해 한 대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는 독일의 68혁명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더불어 좌익 과격파에게도 명분으로 작용하게 된다. 혁명을 꿈꾸던 청년 안드레아스 바더(Andreas Baader)가 동료들과 함께 폭탄테러를 시도하고, 이들의 이상을 옹호하던 기자 울리케 마인호프(Ulrike Meinhof)가 이들에 합세하면서, RAF라고 불리우는 단체가 만들어진다.

바더-마인호프 그룹이 현대사에 던져주었던 충격은 상당한 것이었다. 이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검은9월단(Black September)'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Munich, 2005)>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이상의 한 모습이자 또한 악마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 화해의 정치로 평가되는 전 독일수상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에게 있어서도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았으며, 한 시대가 빚어낸 절망과 희망을 모두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의 이상은 숭고했으나, 방법이 너무 고약하다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울리 에델 감독은 6~70년대 베트남전쟁으로 상징되는 제3세계와 미국 간의 충돌이 낳은 테러리스트들을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으로 스크린에 담았다. 오직 한 곳만을 보며 달려가는 바더 역의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 그리고 지식인으로써 행위의 도덕성으로 인해 고민하는 마인호프 역의 마르티나 게덱, 이들 사이에서 유연한 조정자 역할을 하는 엔슬린 역의 요한나 보칼렉 등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적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Der Himmel über Berlin, 1987)>의 천사이자, <몰락(Der Untergang, 2004)>에서의 히틀러, <비투스(Vitus, 2006)>에서의 따뜻한 할아버지 등으로 친숙한 브루노 간츠가 이들을 쫓는 경찰로 등장하여 감독의 통찰력이 있는 고민을 전하기도 한다.

소규모로 끝없이 벌어지는 인내심의 전쟁. 20세기의 현대사는 너무나도 가혹한 의문들을 생성하는 비극들로 빼곡히 가득차 있다. 2번에 걸친 세계대전, 경제대공황, 동서간의 냉전, 남북으로 갈리워진 제3세계에 대한 침탈,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내전들과 이슬람과 이스라엘 간의 끝없는 갈등, 그리고 제노사이드.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인간이 역사를 통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던 아인슈타인의 말이 잘못되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남아있다는 건 인간에 대해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