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갓 입학했던 20살 시절, 앙드레 지드(Andre Gide)에 빠져들었다. 지금이야 대학이 취업을 위한 전초전으로 전락했을 뿐이지만, 당시만 해도 학문에 대한 낭만이 희미하나마 꺼져가는 불꽃이 살아있을 때였다. 앙드레 지드는 생각만큼 아주 자유롭지도, 마음껏 학문에 빠져들지도 못했던 신입생 시설의 어정쩡함을 떠올리게 한다.

"좁은 문(La Porte étroite)"의 알리샤는 즐겨 인용하곤 했던 인물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던 종교적인 자기 속박. 앙드레 지드는 자신의 시대에 깔려있는 종교성을 답답해했고, 필자는 주변에 깔려있던 사람들의 고리타분한 마인드를 답답해했다. 지금의 20대들에게는 희망이 없다라고 한 마디 쓴소리를 하셨던 교수님도 있었더랬다. 대학에서는 낭만 대신 토익이 자라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앙드레 지드의 다시금 빼들었다. 그의 대표작 "좁은 문"도 좋아했지만, 사실 인상 속에서 더 깊이 남아있었던 건 "배덕자(L'Immoraliste)"의 미셸이었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여 몸이 지독히도 약했던 미셸을 바라보며, 어쩌면 그에게 어떤 동질감 같은 걸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게 익숙했었고, 책가방이 없으면 불안했던, 아마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이 적지만은 않으리라.

미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오직 그를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일념으로 결혼을 한다. 아내로 맞은 마르슬리느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없었고, 여자에 대한 경험조차 없었던 젊은 날의 미셸.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스스로에 휴가를 주기로 결심하고 아내와 함께 튀니지를 향해 긴 여행을 떠난다.

원체 몸이 약했던 미셸은 여행 중에 폐렴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게 된다. 그는 튀니지에서 만난 소년들의 건강한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아, 이미 쇠락하고 죽은 것만을 바라보느라 지금 살아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다며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 마르슬리느의 극진한 보살핌과 자라나는 삶에 대한 애착 속에서 그는 차츰 건강을 회복하게 되지만, 정신은 이미 다른 먼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배덕자"엔 덕(Moral)에 대한 전면적인 질문이 있다. 미셸은 역사의 과거를 연구하다가 병에 걸렸으며, 아내를 사랑하게 되고 소유에 대한 감각을 익히면서 미래에 희망을 걸었으나, 그 희망 또한 철저하게 배신을 당하게 된다. 현재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그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제 난 뭘 하면 되지? 허망하다. 학교에서는 과거에 남겨진 죽은 지식들을 공부하고, 사회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가는 성실한 사람들의 삶. 그들을 존경하지만, 차마 그렇게 살 수 없는 필자의 변명이기도 하다.

앙드레 지드는 반종교적인 소설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모든 구속들을 증오했던 것 같다. "배덕자"에서 유일하게 미셸을 이해하는 친구 메날크는 마치 앙드레 지드 자신을 소설 속의 인물로 등장시킨 듯한 느낌이다. 호기심많고, 세간의 평가를 비웃으며, 소유를 구속이라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항상 깨어있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의식하진 못했겠지만, 20살에 읽었던 길지도 않은 이 책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