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고 했던가. 오늘 컴퓨터의 상태가 이상해서 살펴보니 제작년 관세까지 포함해 거의 30만원에 가까운 거금을 쏟아부었던 사운드카드가 고장나있었다. 나름 재즈애호가 무늬를 내고 있는지라, 야마하 스피커와 데논 리시버 홈씨어터를 더불어 함께 큰 맘 먹고 영입했던 온쿄 PCI200 사운드카드. 10년은 두고 두고 쓰려고 했었는데...

울먹거리며 마더보드 내장형 사운드카드로 다시 컴퓨터 셋팅을 잡아야했다. 음이 풍부해 에이징(스피커 길들이기)으로 많이 이용되는 비발디의 사계로 테스트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그동안 소장만 하고 있었던 자끄 루시에 트리오(Jacques Loussier Trio)의 비발디를 틀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음반을 아직 한 번 들어보지도 않았다니! 자칭 재즈애호가라는 타이틀을 떼어야 할 판이다.


이미지출처: 위키피디아


자끄 루시에 트리오는 바하의 재해석으로 유명하다. 필자도 상쾌한 바하라는 별칭을 붙였을 정도로 그들의 바하 해석은 경지에 가깝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그 경건하다던 바하가 그렇게도 경쾌하고 신나고 상쾌할 수 있다는 데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내친 김에 에릭 사티(Erik Satie) 연주음반도 들어보았으나, 그건 다소 기대에 비해 실망스러웠다. 바하의 좋은 기억을 망치기 싫어 다른 연주음반은 봉인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늘 비극 속에 우연히 접한 비발디는 바하에서의 감명을 그대로 연출하기에 충분했다. 이 음반은 바하부터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베이시스트 Vincent Charbonnier, 드러머 Andre Arpino와 함께 트리오를 구성하여 1997년에 제작되었으며, 1998년의 사티 연주음반의 베이시스트 Benoit Dunoyer de Segonzac와 구성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정밀하게 비교해본 것이 아니라서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베이시스트 한 명의 차이가 감성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만든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활기찬 봄의 Allegro, 정열적인 여름의 Presto, 차분하고 쓸쓸한 가을의 Adagio Molto, 포근함이 가득한 겨울의 Largo까지, 자끄 루시에 특유의 상쾌한 터치와 만난 비발디는 바하 이상으로 매력적이다. 컴퓨터로 인해 짜증이 가득했던 필자는 테스트 삼아 틀었던 이 음반에 빠져들었고, 나중에는 모처럼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와 흥을 돋구어 화음 속에 완전히 넋을 잃어버렸다. 덕분에 이렇게 예정에 없던 즐거운 리뷰까지 쓸 수 있었으니 이야말로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다.






Jacques Loussier Trio - Vivaldi : The Four Seasons(1997)

  • Concerto No.1 in E Major : La Primavera, Allegro
  • Concerto No.1 in E Major : La Primavera, Lagro
  • Concerto No.1 in E Major : La Primavera, Allegro/Danza Pastorale
  • Concerto No.2 in G Minor : L'Estate, Allegro non Molto
  • Concerto No.2 in G Minor : L'Estate, Adagio
  • Concerto No.2 in G Minor : L'Estate, Presto
  • Concerto No.3 in F Major : L'Autunno, Allegro
  • Concerto No.3 in F Major : L'Autunno, Adagio Molto
  • Concerto No.3 in F Major : L'Autunno, Allegro
  • Concerto No.4 in G Minor : L'Inverno, Allegro non Molto
  • Concerto No.4 in G Minor : L'Inverno, Largo
  • Concerto No.4 in G Minor : L'Inverno, Alleg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