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첫 느낌은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일단 두께를 잡아보면 저자와 역자에게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 첫 장을 펼치고 개요를 보면 더욱 놀랍다. 유럽에서 진보라는 말이 의미를 가지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모두 다 집어내는 거대한 프로젝트, 제프 일리(Geoff Eley)의 "The Left 1848-2000(The History of the Left in Europe, 1850-2000)"은 대작이다.
제프 일리는 역사서의 기본형식인 시대별 구분을 바탕으로 유럽 좌파를 재구성한다. 문장을 훑어보면 그가 얼마나 주관적인 평가를 배제하고 최대한의 정보를 이 안에 집어넣으려 노력했는지가 느껴진다. 방대한 양만큼이나 방대한 사례들을 통해 좌파의 역사를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좌파와 여성주의의 관계를 대단히 흥미롭게 보여준다. 19~20세기의 가족중심의 헤게모니와 국가주의, 그리고 세계 1, 2차 대전이라는 재앙 속에서 좌파가 여성주의를 어떻게 소외하는지 세심하게 추적한다. 1968년의 문화혁명에 이르러서야 겨우 인종주의, 인권과 함께 화두로 오를 수 있었던 여성주의를 통해 유럽의 좌파가 가졌던 딜레마를 드러낸다.

좌파가 정치적인 패권과 세계적인 위기의 틈바구니에서 변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과정도 또한 흥미롭다. 투표에서 좌파가 획득한 득표수나 각종 단체들이 보여준 활동 등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그는 자료가 보여주는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공산주의의 실험은 분명히 실패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지 좌파라는 단어는 항상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본디 좌파는 세상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이다. 좌파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기에, 제프 일리의 작업은 하나의 이정표로써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