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 위치한 리트머스에서 아카데미에서 영화 <반두비(Bandhobi)>의 그를 만났다. 방글라데쉬에서 온 이주노동자, 마붑 무스타크 아메드(Mahbub Mustaque Ahmed). 소탈하게 말을 건내는 이 건장한 청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예사롭지 않다.


마붑은 3년 전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왔다. 부도덕한 고용주, 적대적인 사회, 낯설게만 바라보는 시선들. 세계화니 글로벌 경쟁력이니 하는 말들은 너무나 흔하게 들을 수 있지만, 정작 한국의 모습은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에게 대단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사회가 이주민들에게 가지는 편견을 겪은 마붑은 자신의 말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에 그는 이주민센터 등 조직된 곳에서 활동하였으나, 운동권의 심각한 분위기에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겁게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영화에 관심을 하지게 되었단다.

'반두비'의 뜻은 벵갈어로 친구라는 의미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인도,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소위 제3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이 사회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같은 땅에 살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영화 <반두비>는 사랑에 관한 영화이지만 그에 앞서는 교감에 관한 영화이다.

그는 안산의 어떤 학교 한 학급의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고 한다. 외국인 친구를 가진 아이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해있는 안산임에도 한 학급에서 겨우 세 명이 손을 들었으며, 그나마도 영어선생님이었을 뿐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외국인이란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백인을 의미할 따름이다. 그가 아카데미에서 보여준 짧막한 다큐멘터리 속에서 한 마디가 들려온다. "우리는 도둑이 아니예요."

마붑과 함께 한국사회에 질문을 던지던 동료들은 다들 강제출국을 당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봉사활동까지 하며 열심히 살던 이들이 억울함을 말한다는 이유로 쫓겨난 것이다. 그는 그나마 한국인 아내 덕분에 강제출국은 면할 수 있었지만, 사회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나도 차갑기만 하다. <반두비>의 개봉 후 어떤 사람은 왜 하필 방글라데쉬인 따위가 한국인 여자에게 접근하냐며 그에게 협박전화까지 했단다. 한국사회의 2%, 그들은 아직 그늘 속에 있다.

혐오범죄라는 단어는 한 사회의 관용을 보여주는 지수이다. 외국에서는 게이지수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한 지역의 관용도를 게이의 비율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게이지수가 높을수록 예술가나 학자, 기술자 등 고급인력의 비중 또한 높다고 한다. 한 사회가 더욱 더 아량이 있다면, 그 사회 또한 그만큼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영어가 아니라 게이지수가 바로 국제경쟁력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영화 <반두비>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게 되어 개봉일만 벼르고 있었다. 대박작품들 뒤로 명목상의 간판만 걸어놓은 영화관과, 전주에는 12세 관람가였으나 개봉할 때는 19세 이하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마붑의 말처럼 이 영화는 "청소년영화제"의 초청작이었다. 문화의 자유화 바람이 분지도 어언 15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바람처럼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각종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통해 한국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마붑. 그가 지금 또 준비 중인 영화가 올해 말쯤 개봉을 한다고 한다.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