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았다. Sheldon Ross의 "A First Course in Probability"와 함께 했던 시간은... 확률론을 살펴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 누구라도 공감할 듯 싶다. 일단 말이 길고, 그리고 문제를 풀기에 앞서 그 긴 말이 무슨 의미인지부터 곰곰히 생각해봐야만 한다. 수학만큼 모호성에 강박적으로 반응하는 학문도 없고, 지나치게 꼼꼼한 정의들로 인해 툭하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상태에 빠져들곤 한다지만, 확률을 다룰 때만큼은... 언제나 언어의 해석에서부터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풀이를 확인할 때마다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 우린 서로에 대해 오해하는 게 당연한거야. 뭐 그런? ㅠㅠ...

언제나 그렇듯 체력도 인내도 고갈되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대략 될 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대충 대충 어거지로 넘어가고야 말았지만, 그래도 몇 달간 붙잡고 씨름하다보니 여러 생각들이 들기는 했다. 어쩌면 확률이야말로 근대학문에 있어서 가장 혁명적인 성과가 아니었을까?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이 한 마디가 사람들이 확률에 대해 느꼈던 당혹감을 잘 설명해주는 듯 싶다. 확률의 핵심이라면 뭐니 뭐니해도 무작위성부터 꼽지 않을 수가 없는데, 생각해보면 이게 굉장히 놀랍고도 새로운 사고방식이었던 거다. 무작위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일단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들은 그냥 일어난다. 왜 그런지 추측이야 해볼 수 있겠지만, 그저 추측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고, 더러는 원인이라는 게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이번에는 왜 1이 나왔는지, 왜 6이 나왔는지를 따져묻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누군가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도 있고, 그래서 어쩌면 세계의 아주 중대한 비밀을 밝혀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고, 그럴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그래서도 안 된다. 그저 계속 던져보니 각 숫자가 나오는 빈도가 대략 1/6 정도이고, 그러니 이 주사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까지만 알더라도 이미 너무 충분하다. 이게 바로 확률의 놀라운 점이다. 더 이상 '왜 그런지' 묻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수학, 더 나아가 학문, 또 더 나아가 언어,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인간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 애써 만들어온 요약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 갖은 노력을 쏟아붓더라도 그마저도 이해하기란 어렵기만 하다.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가? 계산하라. 계산해서 이해가능한 형태로 만들 수 없다면 결국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정말이지 갈 길은 멀고 시간은 너무나도 짧은 듯 싶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