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혹은 13살.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건 그저 한 소년이 있고,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는 사실 뿐이다. 그렇지만 흔히 하는 말처럼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보려 해도, 마치 거대한 벽을 마주한 것 마냥, 아니 차라리 그보다는 마치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다. 악만 남을만큼 모질지도 못했던 소년. 바퀴벌레만큼이나 무의미한 존재였던 한 소년이 겨우 짜낼 수 있었던 한 마디의 말.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에 선 "가버나움"은 그 한 마디의 말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영화 "가버나움"의 가장 큰 장점은 침착한 시선이다. 섣불리 비난의 대상만을 찾아 헤매지도 않고, 애써 눈물을 찾아 헤매지도 않는다. 그저 엄연히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세계를 담담히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한 장면 한 장면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 대놓고 시끄럽게 떠들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깨끗하고 반듯하게 손질된 교과서 속의 세계와 그 교과서 속에 속하지 못한 세계 사이의 긴장감을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해낸다. 철창 속의 세계와 철창 밖의 세계. 하지만 어느 쪽이 철창 안이고, 또 철창 밖일까. 불편한가? 글쎄, 어쩌면. 비극적인가? 그렇지는 않은 듯 싶다. 그렇다면 희극적인가? 글쎄, 아마도?

어른들한테 말하고 싶어요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지긋지긋해요
(…)
인생이 좆같아요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 받고 사랑 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은 그걸 바라지 않아요
우리가 바닥에서 짓밟히길 바라죠

무책임한 어른들이 만들어낸 지옥. 무책임한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이 무책임하게 자라나 무책임한 어른이 되어 무책임한 말과 무책임한 행위를 하며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애쓰다 또 다시 무책임하게 생명체를 낳고는 또 다른 무책임한 존재로 만들려 한다. 그렇기에 슬프게도 "가버나움"을 희극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이 악을 만드는가. 고색창연하고 고리타분한 질문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생각해보게 된다. 아주 사소한 것들, 생각없이 건내는 말 한 마디, 정말이지 별 것 아닌 잠깐의 즐거움, 스스로의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그마한 시도들. 바로 그러한 것들이 흔히 악이라 칭해지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