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되돌아보게 되었다. 수학과 친해지기 위해 애써온지 이제 만으로 거의 2년. 애초에 나는 왜 수학과 친해지려 했던 것일까.

아마도 소박한 마음이었으리라. 수학과의 어색한 관계가 다른 책들과의 관계에서도 뚜렷한 방해로 느껴지고 있었고, 특히나 경제학이 엄청 쿨한 친구니까 한 번 가까이 가보라고 내 옆구리를 한껏 찔러대던 때였다. 나 스스로도 비록 내색은 못했지만 내심 흑심을 품어왔던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이나마 친해져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마음만큼이나 시작도 역시 소박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연락을 끊었던 정석에게서 겨우 연락처를 얻고 (나중에야 수학이 정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영어교재를 통하지 않았냐는 가벼운 핀잔과 함께) 그냥 가벼운 기분으로, 어느 정도는 기분전환의 마음으로, 그렇게 천천히 다가서려 했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그래도 마냥 좋았다. 수학과의 관계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고, 그동안 봐오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놀라운 경험이었고 너무 늦은 만남이 못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수학과의 알콩달콩한 시간이 늘어갈 무렵, 나는 통계학과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좋아서 만나게 된 건 아니었다. 경제학과 함께 어울려 놀다 만나게 되었을 뿐이었다. 수학도 통계학과는 예전부터 친했던 듯 보였고, 모두와 함께 잘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순진했던 것일까. 관계가 늘어날수록 복잡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갔다. 여느 날처럼 평화롭기만 할 것 같던 어느 하루. 통계학이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여전히 온라인계산기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게 정말이냐고, 어찌 그럴 수가 있냐며, 수학에게 그럴 수는 없다고, 통계학은 다짜고짜 나를 몰아세웠다.

그동안에도 간간히 수학이 은근한 말투로 매트랩 등을 이야기해오긴 했지만, 그리 진지하지는 않았고, 그래서 나는 그저 그러려니 넘어오던 참이었다. 그러나 통계학에겐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다며 자기와는 물론, 수학과도 더 이상 만날 생각을 말라는 게 아닌가.

나는 슬펐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볼프람 알파가 뭐 그리 부족하다고. 억울한 마음에 수학을 바라보았지만 수학은 그저 슬픈 눈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보다 못했는지 경제학이 다가와 나직히 말을 건냈다. 정 힘들면 엑셀 정도라도 안 되겠냐고.

빌어먹을. 젠장.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돌이켜보면 모든 게 다 이 놈 때문이라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모두가 다 한패였다. 그러나 누굴 탓하겠는가. 결국 내가 좋아서 쫓아다녔던 것을.

억울함과 분노, 치기어린 반발심, 지고 싶지 않은 마음, 나는 그런 감정들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 두고 보자. 그렇게 나는 파이썬과 함께 하게 되었다.


... 왜 꼭 일을 하나 벌이면 그 하나로만 끝나지는 않는 것일까. 빌어먹을 인생은 복리의 마법과도 같다.





덧붙임.

어느 순간부터 수학은 내게 집요하게 선형적으로 생각하길 요구하고 있다. 우리에겐 벡터가 있다고, 한 순간이라도 벡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모르는 사이 나에겐 이미 두 가지 숙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우선 벡터를 떠올리기. 그리곤 파이썬처럼 말하기.

...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