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

이제는 거의 밈의 하나로 자리잡은 문구가 떠오른다. 그러나 앨버트 O. 허시먼에게 문제는 경제만이 아니었다. 경쟁과 독점을 주요 테마로 하는 주류경제학도 문제였다. 그는 단호하게 외친다. '경쟁이냐 독점이냐가 중요한 게 아냐. 바보야, 문제는 그들에게 어떻게 우리의 말을 듣게 하느냐라니깐.'

그동안 경제학은 소비자들에게 제품이 마음에 안 들면 떠나면 그만이라는 해답만을 제시해왔다. 선택항이 늘어나는 것은 곧 선이었고, 그 반대는 악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고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결점조차도 너무 쉽게 포기되고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그래서 정말로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이 늘어났을까? 휴대폰을 바꿀 때만 떠올려봐도 선뜻 그렇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 경쟁은 단순히 경쟁사들이 상대의 고객을 서로 유인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아울러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한, 경쟁이나 제품의 다양화는 낭비이자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고객들은 경영진에게 더 효과적인 압력을 가하거나 혹은 쓸데없이 (있지도 않은) '이상적인' 제품을 찾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강명구 옮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2장 이탈', 나무연필, p.75-76

허시먼의 비판은 간결하다. 불만 표출의 방법으로 오로지 '이탈'만이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들더라도 남아서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책을 요구하는 '항의' 역시 중요하며, 공공적 성격이 강한 재화나 서비스의 경우에는 특히나 그렇다. 전세계적으로 한동안 유령처럼 떠돌았던 민영화의 바람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줌으로써 후생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적 안전망을 제거하고 양극화를 가속화하는 쪽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선택권이 늘어날수록 그에 요구되는 노력은 그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즉 선택 또한 비용이며 그 값이 결코 싸지 않다는 것 또한 최근의 행동경제학은 말해주고 있다.

경쟁 체제는 흔히 예상하듯 독점을 억제하기보다는 말썽 많은 고객들을 제거함으로써 부담을 덜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매우 중요하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전제적 독점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는 무능한 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게으른 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즉 독점에 대한 야심은 없지만 동시에 독점으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한 까닭에 더욱 견고하고 억압적이다. 이 유형은 그동안 불공평하게 많은 관심을 받았던 전체주의적이고 확장주의적인 독점 형태 혹은 이윤 극대화와 축적 지향적인 독점 형태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 '5장 게으른 독점은 어떻게 경쟁을 악용하는가', p.124

가격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에 못지 않게 질도 중요하며, 아쉽거나 바라는 바가 있을 때 자신들의 요구를 기업이나 조직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요구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관심을 갖는다. 시장만능의 경제학은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잘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사고해왔다. 그러나 아무런 수고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아니, 그러한 수고로움 역시 자연으로 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자연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것이란 존재하지가 않으니까.

연장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금세 닳아 못쓰게 된다. 그렇다고 내버려두고 방치해둔다면 그저 녹슬고 먼지만 쌓여 역시나 못쓰게 되어버린다.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시장은 결코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어떠한 것이 될 수 없으며, 인간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인간 자신이 만들어놓은 규칙들 위에서 작동하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