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변도 숫자도 필요없다. 사실의 힘, 오직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애써 웃기려 들지도 않고, 애써 울리려 들지도 않는다. 멋지고 아름다운 주연 배우의 노출씬도 필요없으며, 끝이 없는 CG로 눈을 속이지도 않는다. 색다른 상상력 따위도 없으며, 괜시리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충분하다.

점점 영화를 보는 횟수도 줄어들고, 특별히 뭔가를 끄적여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없었다. 하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만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너와 내가 느끼는 현실. 솔직함. 그것만으로도 강한 호소력이 다가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써 존재하는 데에 왜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가. 한 인간이 한 인간으로써 살아가는 데에 인간이라는 사실 이외에 또 어떠한 자격이 필요한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권리를 그 누가 결정하고 판단한다는 것인가.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나는 사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차마 말은 못하지만, 나를 고객님이라 부르며 고개 숙이는 이들이 마치 죄라도 지은 듯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취업이 인생의 모든 것인양 다른 모든 삶을 포기한 이들이 그러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특별한 친절을 바라지도 않고, 내가 굽실거리기를 원치 않는 만큼, 다른 사람 또한 내게 굽실거리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그저 한 사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하는 그저 일개 시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