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위 제목을 쓰다니 ㅋㅋㅋ 나도 참.

즐거웠...다고 말해야만 하겠지. 정석과 이별했을 때처럼 여전히 뭔가 아는 듯 모르는 듯 아는 것 같은 기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쭈욱~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

비록 수알못이지만 그래도 사용했던 교재 Stewart의 Calculus를 품평해보자면, 굉장히 깔끔하고 보기가 편하다. 판을 거듭해오며 괜히 표준적인 교재로 자리잡은 게 아닌 듯 싶다. 고등학교 레벨의 내용도 거의 다 포함되어 있어서, 정석 한 번 보고 바로 미적분학을 돌입한 상태에서 아주 좋은 복습이 되었다. 수학적 감각이 좋다면 기본적인 삼각함수와 급수 정도만 기억하고 있더라도 바로 봐도 괜찮을 만큼 내용이 매우 충실하다. 물론 어지간한 감각이 아니라면 별로 권장할만한 접근은 못되겠으나.

다만 수학 공부를 정석으로 다시 시작했던 건 좀 후회가 되었는데, 왜냐하면 수학과 계속 친하게 지낼 생각이라면 원서를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직각이등변삼각형이라든지, 사다리꼴이라든지, 수두룩한 기하용어들에서부터, 여러모로 다시 익숙해져야 하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뭐 그래도 옛날처럼 사전을 뒤져야 하는 지경은 아니지만서도. 어쨌든 원서라고 두려워 할 건 별로 없겠다. 학문 언어는 특성상 일단 개념부터 정의하곤 그 개념을 통해 설명해나가는 게 보통이고, 수학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define이야말로 수학의 본질이니. 개념 자체가 어려워서 골머리를 썩힐 수는 있어도 영어 땜에 그럴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

그리고 정말 절절하게 느꼈던 건, 새삼스럽게도 컴퓨터가 얼마나 위대한 발명품인가 하는 점이었다. 사전이 필요없는 건 물론이요, 잘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다. 게! 다! 가! 하기 싫은 건 둘째치고, 그냥 할 수 없을 것 같은 계산도, 컴퓨터님께선 (약간의 딜레이만으로) 순식간에 해치워주신다. ㅠㅠ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밀려오는 수식을 볼 때마다 예전엔 이런 걸 손으로 풀었다지...라는 생각에 등골마저 서늘해지는 것이다. 특히나 빌어먹을 다중적분으로 가면, 한 번도 짜증나는 적분을 두 번, 세 번을 거듭해야 하니 -_- 정말이지 컴퓨터님을 숭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절대, 절대, 절대, 조급증을 가져선 안 된다는 점이었다. 즐거움이 고통이 되는 건 순식간이더라. 벡터 미적에 들어갔을 때부터 날도 덥고 진도도 안나가서 조바심이 심했었는데, 델부터 curl, divergence 등 잔뜩 출몰하는 낯선 개념들에 슬슬 영혼이 빠져나가다 미적분학의 끝판왕 격이라 할 수 있는 flux와 Stoke's Theorem에 이르러 기어이 폭발. -_- 몇날 며칠을 끙끙 헤매며 멘붕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뭐 벡터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이걸 과연 이해하긴 한건지 여전히 의문스럽지만, 어차피 하다보면 또 보게 될테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기로 했다. 뭐 언젠간 이해할 수 있겠지. ㅋㅋ

천천히, 천천히, 꾸준히. 원래는 미적분이 끝나면 선형대수학을 해치운 다음, 바로 해석학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이런 이유로 좀 더 돌아가기로 했다. 일단 집합론을 보고, 정수론도 할까말까 좀 고민해보고, 해석학의 경우엔 다른 교재로 두 번 보는 것으로, 코스를 조정 중이다. 까마귀 뇌에겐 이해고 뭐고 간에 먼저 익숙해지는 과정부터 필요한 거다. ㅠㅠ 뭐 어쩔 수 없지. 으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