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에 의한, 인류에 대한 혹은 인류를 위한 고발장

적절하게 냉소적이고, 적절하게 분노하며, 적절하게 진지하다. 유발 하라리는 흔해빠진 예찬이나 탄성, 분칠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해파리와 개코원숭이보다 과연 인간이 더 나은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사피엔스"는, 그 도발적인 질문만큼이나 냉정하게 호모 사피엔스의 지난 시간들을 훑어나간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이란 대략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 듯 싶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주 많은 것들을 이룩해왔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인가?

인류는 스스로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과 또 다른 인류를 정복하고 약탈해왔다. 종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상상의 가치체계들을 만들어서는 '우리'가 아닌 게 무엇인지를 구분하려 들었고, 그를 이유로 열심히도 학살을 자행하고 파괴를 일삼은 후에 그 과실을 누렸다. 기술이 발전하고 인류의 능력이 늘어갈수록 파괴의 규모도 점차 커져왔으며, 열심히 팔다리를 놀려 부를 쌓아갈수록 그만큼 불평등과 소외도 심해지게 되었다. 인류는 누가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는지, 얼마나 호주머니가 두둑해졌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면서도, 그래서 스스로가 얼마나 행복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역사서는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 전사의 용맹, 성자의 자선, 예술가의 창의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책들은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짜이고 풀어지느냐에 대해서, 제국의 흥망에 대해서, 기술의 발견과 확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이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공백이다. 우리는 이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사피엔스", 김영사, p.560

유발 하라리의 고발장이 지나치게 호모 사피엔스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때론 너무 단순화되고 도식적인 설명으로 단정지어버리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언젠가부턴가 인류가 더 이상 묻지 않았던 질문들, 행복이란 무엇인지, 삶의 의미란 것이, 또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뼈아프게 물어온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는 5세기 전 '인간들이 있는 곳에선 어디에서나 바보신을 숭배한다'는 에라스무스의 말을 이제라도 되짚어봐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