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람들은 함께 모여살 수 있는가. 좀 더 정확하게는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라면 어떤 것이라 답할 수 있을까.

홉스의 답변은 너의 자유를 포기하는 정도만큼 나의 자유 역시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나의 자유가 지켜져야하는 만큼 너의 자유도 지켜져야 한다는 게 로크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해답은 아니었다. 한쪽은 강압적으로 독재를 펼치는 권력에 대한 고민을 말끔히 씻어낼 수 없었고, 다른 한쪽은 제어되지 않는 자유가 낳는 또 다른 횡포로 인해 골머리를 썩혀야 했다.

압제와 불평등. 최후의 안전판이 결국 (권력이든 재력이든) 힘을 가진 자의 도덕감정에 의존한다는 점은 근대의 사회계약론이 지닌 공통적인 약점이라 할 수 있었다.

최후의 법정은 사법부도 행정부도 입법부도 아닌 전체로서의 유권자이다.
- 존 롤스 지음, 황경식 옮김, "정의론", '제6장 의무와 책무, 59절 시민 불복종의 역할', 이학사, p.507

롤스는 무엇이 더 나쁜가의 관점으로 제도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제도의 정당성은 상호신뢰와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배려로만 확보될 수 있었다. 사람들 사이의 상호합의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개인 간의 개별적인 차이를 간과해서도 안 되었다. 그에게 있어 제도의 핵심적인 과제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느냐인데, 불신이라든지, 기계적인 중립성, 혹은 산술적인 계산 등으로는 그 기반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공통적인 혹은 거의 일치된 정의감이 없이는 시민적 우호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정의롭게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는 합리적인 목적과 관련 없는 임의의 원칙들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의 형식이 아닌 것이다.
- '제8장 정의감, 72절 원리에 의한 도덕', p.612

롤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합리성과 합당성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합리성은 각자에게 이익이 되거나 선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추구하는 데에 목적을 둔 것이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가치추구에서 정당성에 대한 물음이 결여되어 있다면, 달리 말해 그러한 합리성이 무제한적으로 허용된다면, 사람들 사이의 협력이 불가능해지고 사회의 존재의미 역시 잃어버리기 마련이었다.

이로부터 롤스는 사회제도에 요구되는 두 가지의 최소원칙을 이끌어낸다. 인간은 평등한 자유에 의해 동등한 발언권이 허용되어야 하며, 가장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불평등은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a. 각자는 평등한 기본권과 자유에 입각한 완전한 적정구조에 대한 동등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 구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동일한 구조와 양립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구조에서는 평등한 정치적 자유, 그리고 다만 그러한 자유들이 그 공정한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b.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 첫째, 이들 불평등은 공정한 기회평등의 조건하에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에 결부되어야 하며, 둘째, 이들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들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존 롤스 지음, 장동진 옮김, "정치적 자유주의", '제1부 기본 요소들, 강의I 근본 개념들', 동명사, p.6

흥미로운 건 롤스가 이러한 논의에서 자존감의 문제를 중대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그에게 사회는 단지 생계를 해결하고 재화를 누리는 산술적인 공간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 앞서 상호협력을 통해 서로의 존재와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자존감을 느끼지 못할 때 나타나는 시기심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제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앞에서 규정한 대로) 기회 균등은 비슷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교육과 교양에 대한 유사한 기회를 보장해주고, 적절한 의무와 임무에 합당하게 관련된 자질과 노력에 근거해서 직책과 직위를 모든 이에게 개방시켜주는 일련의 제도를 의미한다. 부의 불평등이 어느 정도의 한도를 넘어섰을 경우에 위험에 빠지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제도들이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도 마찬가지로 그 가치를 상실하는 경향을 갖게 되고 대의 정부는 외형상으로만 그럴듯한 경향을 갖게 된다.
- "정의론", '43절 분배적 정의의 배경적 제도', p.372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이 과연 사회적 분업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가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다.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 즉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가정 아래 입헌주의에 의존하는 그의 입장은 사고모델로써는 의미가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로널드 드워킨의 '박애'처럼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도를 신뢰하기 위해선 먼저 제도의 구축과정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의 생각과는 달리 신뢰는 맥락의 문제이고 역사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지식이라는 것도 역사적 신념 체계로부터 그리 자유롭지는 못하다.

비록 그렇다곤 하더라도, 천부적 자산이 불평등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거나, 제도의 선택은 구성원 개개인의 욕구를 반영하거나 혹은 그 지향점을 결정한다는 등 롤스의 논의에서는 단순한 요약으로 담아낼 수 없는 폭넓은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합당한 다양성이라든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의 남용가능성 등도 생각해볼만한 부분들. "만민법"이 절판되어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공정으로서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각자의 양심적인 판단이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또한 개인들이 그들의 도덕적 신념을 형성하는 데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도 옳지 않다.
- '제9장 정의는 선인가, 78절 자율성과 객관성', p.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