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세상. "멋진 신세계"는 완벽하다. 누구도 배를 곪지 않으며 부족한 게 없다. 인간관계는 철저하게 해체되어 쓸데없는 '감정의 소모' 때문에 걱정할 이유도 없고, 모든 것이 빈틈없이 관리되고 통제되어 범죄와 같은 일탈행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고민도 없고, 불행도 없고, 불안도 없고, 불만도 없고, 오로지 행복만으로 가득한 세상.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올더스 헉슬리는 어떠한 것도 결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세계를 그려나간다.

"자, 이것이 바로 진보라는 것이야. 노인도 일하며 노인도 이성과 교합하며 노인에게도 시간이 없게 되었지. 쾌락으로부터 벗어날 여가가 없으며 잠시도 앉아서 생각할 시간이 없어졌지. 또한 불행히도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무의미한 시간의 터널이 입을 벌린다면 항상 소마(알약)가 대기하고 있는 거야. 유쾌한 소마가 있지. 주말에는 반 그램, 휴일에는 일 그램, 호사스런 동방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이 그램, 달나라의 영원한 암흑 속에서 잠자고 싶으면 삼 그램. 그곳에서 돌아오면 시간의 터널을 빠져 저쪽편에 와 있게 되는 거야. 매일매일의 노동과 기분전환이라는 견실한 대지에 안착되는 것이지. 촉감영화로부터 다른 촉감영화로, 이 여자로부터 탄력있는 여자로, 전자 골프 코스로부터 다른..."
-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p.72

아니, 어쩌면 어떠한 것도 결정할 필요가 없다기 보다는 어떠한 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멋진 신세계"는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기에 완전하다. 이미 정해져있는 직업에 따라 인간이 제조되고, 따라서 계획에 따라 태어난 대로의 인생경로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충분할 뿐이다. 일과 여가, 심지어는 생각마저도 "멋진 신세계"에서는 '관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정해진 대로의 행복. 인간은 행복을 위해 태어나, 행복을 위해 살다가, 행복을 위해 죽는다. "멋진 신세계"는 오로지 행복의 재생산만을 목적으로 삼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기계이다.

그는 다시 외적인 현실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야 눈에 비친 것을 이해했다. 공포와 염증에 사로잡힌 채, 이것인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망상적인 광경, 악몽 같은 획일, 구별할 수 없는 닮은 꼴들의 군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쌍둥이들, 쌍둥이들… (…중략…) 노래 속의 가사가 그를 야유하듯 귀에 울리고 있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오, 멋진 신세계여…."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5막 1장]
- p.265

따라서 "멋진 신세계"에서 너와 나의 차이는 위험한 발상으로 관리되어야만 한다. 누구도 자의식을 가지지 않고,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을 때에만 완전한 행복을 생산할 수 있다.

반복. 모든 것이 예측가능해야 하며, 모든 개체는 다른 모든 개체의 반복으로 존재해야 한다. 행복은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노동도, 섹스도, 여행도, 복제된 장소에 복제된 일정, 복제된 행동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를 위해, 무언가 꺼림직한 의심이 들 때를 위해, 언제든 망각을 허락하는 한 알의 알약이 준비되어 있다.

"날더러 무척 탄력이 있다고 모두들 말해요."
레니나는 자신의 다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명상조로 말했다.
"무척!"
그러나 버나드의 눈에는 고통스런 표정이 담겨 있었다. '고깃덩어리처럼' 하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레니나는 약간 초조한 빛을 띠며 버나드를 바라보았다.
"좀 지나치게 포동포동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점점 고깃덩어리같이 되어 가는구나.'
- p.116

과학 혹은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 등 여러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멋진 신세계"는 인간이 과연 행복만을 위해 사는 존재인지, 또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거친 질문처럼 느껴진다. 서구의 지성은 아주 오랫동안 행복을 부족하지 않은 상태로 정의해왔다. 하지만 사람의 삶에서 부족함이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인 걸까. 행복이 단박에 무어라 정의내릴 수 있는, 그런 확고한 관념일 수는 있는 것일까.

"멋진 신세계"는 행복한 세계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떠한 질문도 허용되지 않는 세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