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하다. 솔직히 의외의 감정이었다. "종의 기원"의 주인공은 적자생존도, 적응도, 진화도, 그렇다고 생명체도 아니었다. 시간, 그것도 단순히 시계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또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모르는, 영원 혹은 무한으로써의 시간이 바로 주인공이다.

종은 변한다.
- 찰스 다윈 지음, 송철용 옮김, "종의 기원", '머리글', 동서문화사, p.87

막연히 품어왔던 인상과는 달리, 다윈은 수백만년, 수십억년의 시간을 느낄 수 없다면 당장에 책을 덮는 편이 좋으리라 충고한다. 진화는 단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또 의도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환경과 또 그에 따라 지속되는 변이, 진화는 생명체의 역사이자 또 결코 완수될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에게 진화란 더 나아진다는 의미를 함축하지 않는다. 또한 개체적 차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단기적인 변이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다윈은 계속해서 자신이 사용하는 용어들이 가치평가적으로 해석되지나 않을지를 우려하는데, "종의 기원"이 남긴 이후의 여파를 비추어보면 상당히 씁쓸한 대목.

복잡한 기관과 본능을 더욱 복잡하게 발달시킨 것은 인간의 이성과 비슷한 초인적인 수단이 아니라, 각 소유자에게 유리하고 경미한 수많은 변이가 조금씩 축적된 결과이다.
- '요약과 결론', p.508

"종의 기원"에서는 오랜 기간 꾸준한 관찰과 실험으로 축적한 다윈의 연구성과들 뿐 아니라 19세기 중반 당시 활발한 논의를 낳았던 과학의 여러 면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이러한 논의가 세상에는 처음부터 그대로 정해진 것이란 없으며 시시각각 변해간다는 의외로 단순한 결론으로 마무리지어진다는 건 더욱 흥미로운 부분이다.

다윈에게 현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존재한다. 살아가고자 하는 생명들의 역사가 곧 진화이며, 따라서 시간 안에서 완전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