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낭만적인 제목이지만, 전혀 낭만적이지는 않은 이야기.

선사시대의 지중해부터 로마의 지중해까지. 그러나 "지중해의 기억"을 시간 순으로 정리된 평이한 개요만으로 요약할 수는 없겠다. 끊임없는 질문, 당신은 역사를 무엇이라 생각하냐고, 당신에게 역사는 어떤 의미이냐고, 귓전으로 페르낭 브로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것만 같다.

당시의 장거리 무역은 소수의 집단, 즉 사회 구성원 가운데 일부에 불과한 상류층의 욕구를 채워준 사치품의 교환에 주력했다. 따라서 겉보기에는 휘황찬란한 문명이 실제로 금박만큼도 깊이가 없었다.
- '4. 통합의 세기: 기원전 2500~1200년의 동지중해', p. 267-268

마치 어른이 되어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는 장난감이 한 때는 더없이 진지한 관심사였듯, "지중해의 기억"에서 죽어버린 유물은 치열했던 삶의 현장이 된다.

치열함. 농업과 문자, 문명은 세대를 잇는 오랜 과정을 통해 탄생하였고, 석기나 토기를 비롯한 각종 도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인구가 모여들고, 도시가 생성되고, 사회적 결속과 집단으로 살아가기 위해 법과 종교도 만들어졌다. 짧막하게 압축된 연표의 단호함과는 달리, 어떤 것도 '그 순간'에 이루어졌던 것은 없었다.

사실 로마는 오래 전부터 불안한 상태였다. 지배계급-귀족과 관직을 통해 귀족이 된 평민으로 이루어진 '노빌리타스'-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전역에서 수많은 소지주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들은 소작농이나 군인으로 전락해버렸다. 부분적으로 도시의 평민들은 이런 와해의 산물이었다. 고위 관직을 독점했고 원로원을 지배했으며 측근들에게 관직을 나눠주었고, 특히 비옥한 캄파니아 등에 거대한 토지를 소유해서 노예를 동원해 농사를 지었던 노빌리타스의 곁에는 고리대금업자와 징세 청부인 등으로 이루어진 '부르주아'가 있었다. 부르주아 계급은 돈에 대한 지나친 탐욕 때문에 사회의 큰 불안요소였다. 요컨대 병든 사회가 밑에서부터 붕괴하면서 권력층과 제도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 '8. 로마, 지중해를 넘어서', p.451

각자의 지중해. 사람이 하루 하루의 삶으로 나이를 먹어가듯이, "지중해의 기억"은 개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성장기와도 같다. 페르낭 브로델은 어떠한 특정한 발명 혹은 영웅으로 지중해를 바라보지 않는다. 지중해는 삶의 터전이었고, 계속 그러했으며, 또한 지금도 그렇고,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은 언제나 과정이다. 단순한 수치로만 증명될 수는 없는 나이들어감이기도 하다. "지중해의 기억"에는 그 과정의 한 때의 시간이 그려져 있다.

기술의 발견만으로는 기술의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 … (즉) 옛 세계에서 끊임없이 확대되었던 노예제도가 기술혁명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 하기야 기술을 발전시켜야 할 절실한 필요가 없는 사회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느리고, 설령 어떤 기술을 알고 있더라도 신속하게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은 타당성이 있다. 실제로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 '7. 그리스의 기적', p. 421

또 하나, 새로운 이론이나 증명된 사실을 간단하게나마 주석으로 달아놓은 친절함도 숨겨진 장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