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시인들이 나름대로 붙여준 이름으로 예찬하는 모든 여인들이 다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 대부분이 그들 시의 주인공으로 삼기 위해 가공해낸 인물로, 이는 시인들 스스로를 사랑에 빠져버린, 그리고 사랑할 만한 용기를 가진 남자로 그려내고 싶어서였다. 그러니 나 역시 알론사 로렌소라는 훌륭한 아가씨를 아름답고 정숙하다고 생각하고 믿으면 그걸로 충분한 거야.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돈키호테", 시공사, p. 327


오타쿠를 위한 찬가.

책을 읽다 책이 되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주변사람들은 당연히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설이 그를 망쳐놓았노라고,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그를 제정신으로 돌려놔야만 한다고, 한곁같이 걱정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여행은 비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여관주인에게 기사의 작위를 받고, 야윈 말에 올라타 창끝을 치켜들었던 그는, 풍차라는 괴물에 거침없이 돌격하다 땅에 쳐박히기도 하고, 괜히 지나가는 양치기들의 비위를 거슬려 몰매를 얻어맞기도 하고, 혹은 한가로운 귀족들의 장난에 휘말려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시종 산초는 무모한 모험을 찾아다니는 그에게 연신 투덜거린다. 툭하면 얻어맞는 것도 모자라, 길바닥에서 변변치 않게 배를 채우고 잠을 이뤄야만 한다니,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곁을 떠나지는 않는다. 그가 하는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되는 불평불만에, 때때로 그를 속이면서도, 끝내 산초는 미치광이 주인에게로 돌아오고야 만다. 그래서 산초는 웃음거리가 된다.

소설이 그를 망쳐놓았는가?
맞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불의에 맞서는, 책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는 미치광이였는가?
맞다. 그는 현실에서도 책 속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려 들지도 않았으며, 이해득실을 따진다거나, 혹은 고의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그는 현실에서 소설 속의 이야기를 펼쳐내고자 했고, 그래서 기사도를 목숨보다도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이었다.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돈키호테에게 삶은 곧 소설이어야만 했다. 제정신을 차렸을 때, 따라서, 인생은 끝나는 것이었다.

아이구, 나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치광이 한분의 정신을 제대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 세상 사람에게 끼친 피해를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리, 돈 끼호떼가 그의 허튼짓으로 우리 모두를 재미있게 한 그 즐거움에 비하면 그의 정신이 말짱해져서 얻는 이득은 그에 못 미칠 거라는 것을 모르세요? 하지만 내 짐작엔 학사 나리께서 어떤 노력을 다하셔도 저렇게 완전히 돌아버린 미치광이 한 사람의 제정신이 돌아오게 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동정심에 위배되는 일만 아니라면 저는 돈 끼호떼가 절대 병이 나아선 안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가 건강해지면 그의 재치와 매력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그의 하인인 싼초 빤사의 재치까지 잃게 될 테니까요. 그들의 재치있는 말들은 어떤 것이든지 우울증 자체라도 즐거움으로 되돌려줄 능력이 있거든요.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민용태 옮김, "기발한 기사 라 만차의 돈 끼호테 2", 창비, p. 769

두 권의 표지가 저토록 다른 이유는 순전히 2권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기 때문.
매끄러운 연결을 위해 가급적 동일한 역자의 번역본을 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