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게서 멀어져야 하지. 그리고 보다 진정한 대화는 바로 모르는 사람끼리 우연하게 나누는 대화야.
- 체사레 파베세 지음, 김운찬 옮김, "레우코와의 대화", '오이디푸스와 어느 거지가 말한다', 열린책들, 2010, p.105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한 짧은 대화들, 혹은 주석+시.

어느 한 사람이 힘겹게 벼랑 끝에 오른다. 교목림 사이에서 헤매다가 마침내 탁 트인 바다에 도달하게 되었다. 단단하게 두 발을 딛고 선 그 이는 창공을 향해 손가락을 내뻗는다. 그리고 말한다. 너는 신이냐, 나는 인간이다라고...

다소 유치한 것 같기는 하지만 "레우코와의 대화"는 이런 상상을 하게끔 한다. 27개의 단편적인 대화들은 마치 신은 결코 인간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만 같다. 신은 인간이 삶에서 겪어야만 하는 고통을 모른다. 아무리 맞서더라도 결국에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죽음에 대해서도 영원한 존재가 알 수 있을리 없다.

영원을 추구하면서도 쉴 사이 없이 변덕을 부리는 인간의 이중성. 체사레 파베제에게 인간이란 삶과 죽음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존재가 된다.

나는 사는 것을 원하지, 행복한 것을 원하지 않아요.
- 같은 책, '비르비우스와 디아나가 말한다', p.168

이 책이 제2차세계대전 직후에 나왔다는 건 꽤나 흥미로운 부분으로 생각된다. 반파시스트였던 그는 1935년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몇 개월 간의 복역생활을 겪기도 했으며, 1943년 이탈리아의 항복 직전 징집되었을 때에는 재미있게도 천식으로 인해 전력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한 채 군병원에서 머물다 귀향하게 된다. 이후 반나치 파르티잔 등의 무력 활동으로부터는 거리를 두고는 번역이나 공산당기관지 편집에 참여하는 등 글쓰기 활동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혀 슬픈 것은 없어요. 필멸의 인간들은 피로 이야기를 만들지요.
- 같은 책, '디오니소스와 데메테르가 말한다', p.233

그리고 1947년 펴낸 "레우코와의 대화"에서 그는 뜬금없이 신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솔리니가 '우리들의 바다(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라는 고대로마시대의 영광을 앞세워 나치와 협력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며 이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히틀러도 고대로마에서 전통성을 빌려온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또 다시 전통성을 빌려와 제3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니...

어쩌면 체사레 파베세가 종전 이후 신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바로 파시스트의 탄생과 승리, 그리고 패배의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완전무결한 인간, 더 나아가 신을 꿈꾸었던 인간의 참혹한 실체. 인간은 어리석었고 신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체사레 파베세가 오른 벼랑은 그런 시대를 헤메이다 만난 것이었다.

운명이 우리 불멸의 존재에게 부여하는 변덕스러움을 우리는 알고 있지.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초라함 속에서 영원한 순간처럼 그 변덕스러움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바로 자신들의 덧없음이 자신들을 고귀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까?
- 같은 책, '어느 사티로스와 어느 나무 요정이 말한다', p.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