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미, 혹은 맛있는 요리.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맛집.

"델리카트슨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아이와 어른, 남녀노소를 가리지도 않는다. 쉬이 찾아보기 어려운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는 기세등등 달려들 준비가 되어있다.

과장된 표정, 음식을 향한 처절할 정도의 절박함. 이 영화는 코미디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식재료의 정체가 온몸을 으스스하게 만드는 공포물이기도 하다.

고기의 분배와 집세를 통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푸줏간주인 겸 집주인, 그의 권세에 빌붙어 사는 정부,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의 권세에 힘입어 공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우체부, 그다지 부족할 게 없는 세입자 부부의 아내로서 매일마다 자살을 시도하는 중년여성, 그리고 그런 그녀를 조심스레 짝사랑하는 소심한 형과 함께 사는 동생, 쪼들리는 주머니 사정에 의기소침하기만 한 남편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억척스럽기만 한 아줌마, 아예 외따로 살아가기로 작정한 듯 자신만의 별미를 위해 어떠한 수고도 아끼지 않는 괴짜노인 등 이들 거주민들은 그저 같은 건물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외에는 전혀 닮은 데라곤 없어보이지만 좋은 식재료, 즉 고기에 대한 갈구에 있어서는 놀라우리만큼의 똑같은 열망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더러운 놈들
돈을 처먹는 놈들이라니!
곡식이 돈인데 말이야
우리 세계는 곡식이 곧 돈이라고
돈과 양식도 구별 못 하는 미친놈들

살기 위해 먹는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침없는 악취미의 공세를 앞세운 두 명의 감독, 장-피에르 쥬네와 마르크 카로에게서 패밀리레스토랑에서나 기대할 법한 따뜻한 환대 따윈 일찌감치 포기하는 편이 좋다. 마치 화면 뒤에 삐딱하게 앉아선 냉소어린 표정을 한 모습이 보이는 듯 착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그들은 어떤 대답이라도 비웃을 준비마저도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델리카트슨 사람들"은 음식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요리를 단순한 음식으로써, 배고픔을 단순한 영양의 결핍상태만으로 한정짓지는 않기 때문이다.

피땀어린 노력의 결실, 피와 살로 만들어진 식사라는 상투적인 은유는 이 영화에서 더 이상 흔해빠진 수사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구두와 콩, 고기와 옥수수, 과자와 마술, 첼로와 톱. 지나치게 공을 들였다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오프닝에서부터 어떻게든 인물을 장난스레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의지(혹은 악의)로 점철된 클로즈업, 그리고 삽입곡 "Medaille d'Honneur"에서 채 반가움을 느끼기도 전에 화면 전부를 소리로 구겨넣어버리는 광경에 이르기까지 장면장면마다 재기발랄하면서도 뻔뻔하기 그지 없는 두 악당의 레시피가 그저 당황스럽기만 한 배합으로 느껴질런지도 모르겠다.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요리는 비록 첫 맛은 개운치 않더라도 그래도 그 가벼워보이는 풍미에서 생각 외로 꽤나 오래 남을 여운을 찾을 수 있다. 호의로 포장된 소위 맛집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어쩌면 이보다 더 그저 당황스럽기만 한 요리를 만날 때가 더욱 많은 것 같다.

커피?
세월 좋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