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의 단편, 혹은 변주.

똑같은 소설을 8번 읽은 것만 같다. 오정희의 "유년의 뜰"이 여성의 시간을 변주하듯,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더블린의 공간을 변주하듯, 토마스 만의 중단편들을 모아놓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순수와 탐미를 변주해낸다.

거칠면서도 섬세하다. 아름다우면서도 떳떳하지 못하다. 지독할 정도로 미적이면서도 또한 지독할 정도로 이성적이기도 하다. 교양과 심미안을 갖추었지만 동시에 겁이 많고 무기력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세련되고, 또 한편으로는 좋았던 옛날을 추억하는 듯한 촌스러운 자의식. 마치 예술의 전당과 시외버스터미널 사이에 서있는 것처럼, 미술관과 동물원의 사이에 서있는 것처럼(물론 그 영화는 그저 낭만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이 책은 예찬과 두려움, 위대함과 천박함, 화려함과 경건함 사이를 배회한다.

1900년대의 초반, 유럽의 중상류층 사회에 교차하던 분위기,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는
갑작스런 몰락에 대한 은밀한 두려움이 감돌던 그 황혼기적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의 초반에 대한 기억 역시 어쩐지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는 감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