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있어도, 관심이 없어도, 계속 미루어두기만 했던 영화들. 대부분이 화제가 만발했던 블록버스터들이라 간단히만 정리. 망각 방지용.


1.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제주 4.3을 재조명한 의의는 새삼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음. 역사의 무게에 지나치게 주눅들지 않고, 1948년 제주도에서 살아간 개인들의 소소한 시선으로 이끌어간 구성이 특히나 돋보였음. 초반에 한 번, 후반에 한 번, 두 차례의 동굴 안 롱테이크는 아마 2013년 최고의 명장면으로도 꼽을 수 있을 듯.

다만 이걸 장점이라 해야할지 단점이라 해야할지는 애매하지만, 중국 6세대 감독들의 영향을 상당히 강하게 느낄 수 있었음. 거대한 세계에 질식되어가는 작은 개인이라는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인한 우연인지, 아니면 그렇게 겸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감독들을 향한 오마쥬인지, 어떤 쪽인지는 판단보류.


2. "아바타"

이 영화가 왜 3D로만 기억되는지 어처구니없음. 미국이 그동안 남미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해왔던 깡패짓들의 결정판. 다만 불가해->신비->교감으로 넘어가는 과정까지는 좋았으나, 갑자기 난데없이 기적으로 건너뛰는 데에는 여전히 서구적인 한계가 있는 듯. 물론 교감이 기적을 낳은 거야, 라고 열심히 변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의 전부분에서 "늑대와의 춤을"을 고스란히 변형한 듯한 느낌을 받음. 그게 단지 착각이었을 뿐일까?

어쨌든 S.F.판타지라는 장르 특유의 잇점을 아주 잘 이용한 것만은 분명. 덕분에 "포카혼타스"와는 확실한 선을 그을 수 있었으니까.


3.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

디즈니 말 나온 김에. 1편만으로 충분, 그리곤 아, 디즈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

아! 딱 한 마디만, 고마 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4. "스타 트렉", 다크니스 제외 전 극장판

"모션 픽쳐" : "스타 트렉"의 팬이거나, 혹은 강한 인내심이 있다면 상당히 괜찮음. TV시리즈 특유의 사색적이고 고전적인 느낌이 잘 살아있음.

"칸의 역습" : 음, 흥행을 노렸군. 희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글쎄.

"스포크를 찾아서" : "칸의 역습"의 속편. 주인공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라는 법칙을 실감.

"시간 초월의 항해" : "스타 트렉" 전 시리즈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에피소드로 꼽을 수 있을 듯. 우주여행에 대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시리즈인데, 정작 현대의 지구를 보여준 에피소드가 가장 뛰어나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생명과 자연, 역시 "스타 트렉"은 진정 선구적인 작품.

"최후의 결전" : 종교적 맹신을 경계하는 내용이기는 한데, 음...

"미지의 세계" : 화해로 이르는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생각해보게 함. 용기와 의지, 그리고 강렬한 바램. 증오가 들끓는 현재에 있어서도 충분히 꼽씹어볼만한 에피소드.

"넥서스 트렉" : 음... 주제도 과거이고, 이 에피소드 자체도 과거팔이.

"퍼스트 콘택" : 아마도 흥행성만으로는 최고. 실수를 하고, 더러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잘못을 하기도 하지만, 인간은 어떻게든 앞으로 더 나아지고야 말거야라는 강한 믿음을 엿볼 수 있음. 사실 이게 "스타 트렉"의 가장 큰 주제이기도.

"최후의 반격" : 음... 이건 웨스턴? 불로불사라는 낯익은 소재가 지닌 탐욕에 대한 경계.

"네메시스" : 음... 이것도 웨스턴? 배경만 우주선일 뿐. 인간배아복제가 한창 이슈가 되었던 시절의 뜬금없는 에피소드. 문제의식만 괜찮았음. 그게 문제.

"더 비기닝" : 아, 이제 진 로덴베리는 정말 이름만 남은 듯.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재커리 퀸토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흠찟흠찟. 미드의 폐해. "아바타"의 히로인이기도 했던 우후라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5.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음... 상당히 의심스러운 작품.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감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됨. 영화적 완성도는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전편의 기억을 망쳐놓았음. 무슨맨, 무슨맨 식 히어로물의 함정인 건지, 아무리 거지같고 기만적인 질서라도 그래도 변화보다는 낫다는 식의 결말에 당황. 특히나 대놓고 2008년의 금융위기와 그에 이어진 미국시민들의 분노를 주요모티브로 삼은 듯 보이는데... 차라리 그러지 않는 편이 나았을 뻔.


6. "베를린"

류승완은 B급 감독일 때가 좋았음. 우리도 미국처럼 깡패짓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낄 수 있음. 무어라 말하는 건지 잘 들리지도 않는 대사전달력에 완전히 항복. "지슬"을 보며 "베를린"에도 자막이 있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별 의미도 없고 쌩뚱맞는 대사들을 뭔가 멋있는 척 읊어대는 것도 B급일 땐 즐거웠으나... 굳이 한석규까지 등장시키며 "쉬리"를 패러디할 거라면 제대로라도 하든지... 웰메이드와 양아치스러움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듯.


7. "광해 : 왕이 된 남자"

오, 오랜만에 본 그럴듯한 역사 판타지. 장진 감독이 아니고서도 이런 작품을 할 수 있는 감독이 있다니, 앞으로도 기대.


8. "아이언맨" 무려 1편.

궁금하긴 했지만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역시나 안 보는 편이 나았음. 이러다 마블이나 디즈니나 어느 쪽에서든 한 쪽을 인수하기라도 하는 건 아닌지. 아, 그러고 보니 2009년에 이미... "스타 워즈"도 그렇고, 아무튼 결론은, 아, 디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