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역사로, 그리고 합리성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듣는 책이다. 이집트와 중국, 그리스, 로마 등을 거쳐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프랑스, 영국, 러시아, 미국으로 천편일률적으로 개요된 세계사 속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책이다.

역사책 안에서 영국령, 프랑스령, 네덜란드령, 벨기에령, 이탈리아령, 독일령 등의 점령기록이 아니고선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또 이제는 기아와 분쟁의 인상으로만 각인되어버린 아프리카의 목소리.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 널리 알려진 속담은 다음과 같다. "백인들이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은 '성서'를 갖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졌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성서'를 갖고 그들이 땅을 가졌다."
-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안인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p.150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지도를 거꾸로 뒤집으며 시작된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의 걸작들조차 지녔던 한계들, 서구의 시선으로 서구를 반성하는 것을 뛰어넘어, 저자는 아프리카 출신의 화가의 삽화를 배경으로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역사적 사실을 총망라하려는 딱딱한 집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역사 이전, 문명의 태동기, 식민지시대, 그리고 현대로 이어지는 큰 흐름 안에서 노래, 시, 민담과 구전을 비롯한 다양한 기록들을 유연하게 끌어모으며, 정말, 과연, 진실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에 더욱 큰 관심을 갖는다.

"하나의 삶이 모든 시간이다. 남자로 살기, 여자로 살기, 젊은이로 살기, 소녀로 살기, 아버지나 할아버지, 어머니나 할머니, 오빠나 누이로 살기, 그렇게 많은 삶이 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시간이 있다."
- 같은 책, 카메룬의 바카족 여인 멘실라와의 인터뷰 중에서, p.71

인간이 던지는 모든 물음의 끝에는 결국 인간이 있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에서 역사는 단순히 인간이 남긴 기록을 넘어 인간에 대한 기록이 된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그동안 봐왔던 역사의 풍경이 얼마나 폭력을 예찬해왔는지를 떠올려보게 된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공격하고, 지배하고,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 역사가 얼마나 인간을 간략히 요약하려 해왔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풍요로움이란 다채로움이다. 다채로움을 잃어버린 인간은 결코 풍요로울 수 없다. 기껏해야 과잉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