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종, 걸프만의 낭만, 디오라마, 혼합재료, 유리관, 106×106×91cm, 2010, 부분


진기종 kijong Zin

1981년 서울 태생의 설치미술가.

"(이) 모든 것은 텔레비전 화면 위에서 제거되기 위하여 온다. 우리는 결과 없는 사건들의 시대에 있다."
- "시뮬라시옹", '허무주의에 관하여', 장 보드리야르 지음, 하태환 옮김, 민음사, p.252


조그마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 어쩌면 작은 지구일지도 모른다. 조각난 풍경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저마다 무심한 세상의 풍경을 이룬다. 하늘에는 구름이 떠있고, 건물 옆으론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철로 위엔 기차가 달려가는, 이 낯익은 풍경들의 낯선 조합은 TV의 화면으로 중계될 때에야 비로소 하나로 모아진다. 하지만 CNN과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의 무수한 채널이 각각 방영되는 무수한 TV로도 진기종 작가가 펼쳐놓은 작은 세계를 모두 담아낼 수는 없는 것 같다.

컨텐츠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정보의 공유가 마치 지상과제처럼 느껴지는 현대문화의 가장자리에서, 진기종 작가는 느닷없이 모든 미디어가 지닌 본연의 한계, 재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사각의 TV가 지닌 화면의 한계, 사진이 지닌 프레임의 한계는 그의 자그마한 세계를 재현하는 화면으로 명확하게 드러나보인다. 화면의 제한된 시선은 조그마한 세상의 특정한 장면의 과장 혹은 생략에 불과하고, 온갖 로고로 치장된 화면을 벗어나는 순간 우스꽝스러운 풍경만이 눈 앞에 남을 뿐이다.

게다가 그가 만들어낸 작은 지구가 근접성이 무척이나 떨어지는 어딘가의 이야기라는 건 더욱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까 싶다. 세계화라는 단어로 억지로 거리를 좁히려 했던 노력들이 진정으로 전세계의 거리를 좁히는 데 성공했다고 과연 단언할 수 있을까. 아니 사실상 바로 이웃에서 벌어지는 일조차도 직접 접하는 것보다는 TV 속 뉴스나 인터넷 검색 등으로 접하는 쪽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까. '정보는 의미를 연출만 하면서 소진되어 버린다'는 보드리야르의 지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유의미해보인다. 물리적 거리가 전자기적 거리로 더욱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진기종 작가의 작업에서 크기는 곧 거리가 된다. TV화면은 카메라가 품고 있는 대상과의 거리를 숨길 수가 없고, 조그맣게 축소된 세상은 먼 곳의 현실감 없는 이야기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심적인 거리를 드러내어 보인다. 한발자국 떨어져서 내려다본 지구. 달에서 내려다보는 지구의 모습은 초록별의 아름다운 모습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조금쯤은 우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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