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딧세이아와 모더니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연상시키는 작품.

아마도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봤던 영화 중에서 가장 복잡한 심경으로 봤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의식의 흐름을 담은 텍스트를 그대로 담아내기 위한 노력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도 했고, 또 적어도 문학적으로는 고전으로 자리잡은 표현방식이 이토록 실험적일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예언자를 꿈꾸던 열망이 현재화 된 것에 조금쯤은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현실감 없는 도시
Unreal City,

(나 티레시어스는 바로 이 긴 의자 혹은 침대 위에서
행해진 모든 것을 겪었노라
And I Tiresias have foresuffered all
Enacted on this same divan or bed;
…)


- T. S. 엘리엇, "황무지The Waste Land" 중에서

어떤 말을 하더라도, 위에 인용한 T. S. 엘리엇의 시만큼 "불안의 영화"를 잘 압축해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모더니티의 위대한 유산들로 남은 상당수의 작품들이 그러했듯, 페르난두 뻬쏘아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불안의 영화" 역시 자의식의 여행기라고 부를 수 있을 듯 하다. 눈만 뜨면 보이는 일상의 장소들은 오딧세이가 거친 여정에서 만났던 풍경들로 변주된다.

취객들이 몰려드는 어수선한 술집은 몰락한 트로이이고, 맞은 편에 앉아 조용히 술잔을 들어올리는 낯선 이는 텔레마코스(오딧세우스의 아들)이며, 집안을 맴도는 그림자와 길가의 거지는 저승을 떠돌아다니는 혼백들이다. 다만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오딧세우스는 어떤 특정한 인물이 아닌 책이기에, 언어의 자의식이 새로운 영웅이 되어 항해를 이끌어나간다는 게 눈여겨볼만한 차이점이기도 하다.

"불안의 영화"는 정말 어떻게 봐도 쉽지 않은 작품이라 보는 내내 두통을 느껴야만 했다. 꿈을 꾸는 것처럼 '현실감 없는 도시'에서 지혜와 진실을 잡고자 갈망하는 언어의 여행은 왠지 모르게 바그너를 연상시키는 음악을 배경으로 자의식의 바닥을 향해,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걸어만 간다. 퍼즐과도 같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수수께끼를 원한다면, "불안의 영화"는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작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