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

거진 5시간에 육박하는 런닝타임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라울 루이즈 감독의 "리스본의 미스터리"는 마치 영국 소설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로버트 알트만의 "고스포드 파크"에서 그랬듯 귀족 세계 이면에 꼭꼭 숨겨진 비밀들을 흥미롭게 묘사해낸다.

이 작품을 경험한 관객들이었다면 "설명을 해주지"라는 말이 인상적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다. 신분의 덫에 갖혀버린 인물들이 지녔던 사랑과 꿈, 야망, 호기, 질투, 욕심, 집착들의 서사. 왜 자신의 이름에 성이 없는지를 궁금해하는 한 순진한 어린아이의 질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비교적 흔한 소재인 출생의 비밀 따윈 고작 시작에 불과할 정도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폴레옹 시기를 전후한 포르투갈 궁정사회의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아마도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식의 교묘하고도 뻔뻔한 화면처리를 들어야만 할 것 같다. 아무리 숨기려 입단속을 하더라도 기어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비밀들 앞에서 "리스본의 미스터리"라는 제목은 그저 하나의 역설과도 같은 공공연한 비밀에 불과해진다.

위신과 명예만으로 목숨을 건 결투를 하던 궁정사회. 하지만 고고한 척 여전히 캔버스 안에서 미소짓고 있는 그들이 정말 그런 명예를 누릴만한 인물들이었을까. 온갖 추문과 가십에 목말라 하는 귀족들의 호기심은 오늘날에도 그리 낯선 풍경만은 아닌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