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이 된 영화, 혹은 30여년간의 서구풍경을 기록한 방만한 사진첩과도 같은 작품.

아마도 감독과의 대화가 없었다면 이 영화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 같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악보에 맞춰, 때론 공격적으로, 때론 서정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장소들. 클라우스 비보르니 감독은 "서구의 몰락에 관한 연구"는 향수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리고 조심스레 덧붙인다. 향수가 더러는 호러무비보다도 더욱 무서울 수도 있다고.

마치 교향곡처럼 5개장과 2개의 막간으로 이루어진 "서구의 몰락에 관한 연구"는 그가 서구사회의 과거를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들을 엿볼 수 있다. 한쪽에서는 에펠탑을 세우며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었고, 또 한쪽에서는 전에는 누구도 묻지 않았고 물을 필요도 없었던, 지구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가 중요해지던 시절.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묘사하는 것처럼 근대적 산업화가 이끌어낸 문명의 성취들에 대한 향수들엔 희망의 동전의 반대편에 꼭 같은 정도의 절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이 작품은 장장 7시간에 달하는 "지구의 노래"라는 작품의 한 토막이라고 하니, 한 번쯤 구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역시나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