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문제. 성당의 한 신부가 선에 대해 질문을 한다. 그는 세속에 만연한 악을 증오하고, 또한 그러한 세상을 지켜보기만 하는 사제들에게도 불만을 지니고 있다. 분별력을 지니고 세상과 가까워지라는 주임신부의 충고도 그에게는 오직 위선으로만 들릴 뿐이다. 절대선을 향한 영혼의 몸부림, 그런 도니상 신부에게 사탄이 찾아와 다른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준다.

빔 벤더스가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 1987)>로 인간이 되고 싶었던 천사의 아름다운 사랑을 묘사했던 1987년, 한 편에선 정반대로 모리스 피알라가 <사탄의 태양 아래서(Under the Sun of Satan, 1987)>로 악마의 태양이 빛나는 세상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두 영화 모두 공통적으로 인간의 실존을 묻는다. 하지만 천사와 악마라는 상반되는 소재만큼이나, 빔 벤더스가 우울한 세계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찾으려했다면, 모리스 피알라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악의 구렁텅이 속으로 인간을 던져놓는다.

권태롭고 속물적인 인간상, 그리고 도피의 실패. <사탄의 태양 아래서>에서 인물들의 의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노력이다. 파리로 가면 삶이 달라지리라 기대하는 16살 소녀는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죄의식에 사로잡혀간다. 성자로 추앙받는 신부는 아이러니하게도 악마에게 얻은 능력으로 인간의 잠재된 악마성을 보며 깊은 고뇌에 빠진다. 소녀와 신부는 죽음으로 세상에서 해방되지만, 영혼은 여전히 절망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탄의 태양이 내려쬐는 세상에서 과연 한 인간은 모든 인간이 지닌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반복에 불과한 것일까. 형이상학에 관심이 있다면 도전해볼만한 작품이다.